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로 현대산업개발의 신뢰도가 추락한 가운데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7일 자신의 거취를 발표한다. 정 회장이 침묵을 깨고 공식 입장을 내놓는 것은 지난 11일 사고 발생 후 6일 만이다.
사고 발생 이튿날인 12일에 광주로 달려가 사고 수습에 주력한 정 회장은 사고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자, 대국민 사과문 발표 형식을 통해 거취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현대산업개발은 17일 오전 10시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 대회의실에서 정 회장의 입장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16일 밝혔다.
정 회장은 광주 현장에서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대표 등과 사고 수습 방안, 향후 대책을 논의하다가 15일 서울 자택으로 올라와 거취 문제를 두고 숙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정 회장이 사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 붕괴 사고 당시 정 회장이 “전사적으로 직접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과 7개월 만에 사고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그룹 경영에도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광주 북구 운암3단지 재건축 조합은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산업개발에 시공계약 해지를 검토하겠다고 통보했고, 서울 강남구 개포1단지 주공아파트 재건축 일부 조합원들은 ‘아이파크’ 브랜드를 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입구에는 ‘현대산업개발 보증금 돌려줄테니 제발 떠나주세요’ ‘우리의 재산과 목숨을 현산에게 맡길 순 없다’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회장의 결단 없이는 사태 수습과 대국민 신뢰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 회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무겁게 받아들여 HDC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이미 현대산업개발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 회장으로서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등 사실상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다만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아직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물러나면 현대산업개발을 맡은 지 23년 만의 불명예 퇴진이다. 1962년생인 정 회장은 30대 나이 때인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자동차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장자인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차 경영권을 넘기면서 정 회장은 부친인 고 정세영 현대차 명예회장과 함께 1999년 3월 현대산업개발을 물려받았다.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회장 부임 이후 건설 외 사업 다각화를 꾀했다. 2019년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참여하며 그룹 규모를 키우려고 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결국 인수를 포기하게 됐다.
정 회장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린 사이 현대산업개발은 건설 시장에서 힘을 잃었다. 2004년 시공능력평가 순위 4위까지 올랐던 현대산업개발은 2014년 13위로 처진 이후 9~10위로 ‘톱10’에 힘겹게 턱걸이를 하고 있다. 더구나 있을 수 없는 대형 건설 사고를 두 번이나 내면서 창사 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