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 도스토옙스키…그 작가는 진짜 ‘광인’이었나

입력
2022.01.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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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자들이 탐구한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


“사람들은 인간의 뇌가 머리에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뇌는 카스피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온다.”(니콜라이 고골 ‘광인 일기’)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의 ‘광인 일기’는 마흔두 살의 하급 관리 포프리신이 과대망상에 빠져 미쳐 가는 과정을 그린다. 현실과 달리 망상 속에서 포프리신은 자신이 더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급기야는 자신을 스페인 왕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가 하면 고골의 또 다른 대표작 ‘코’는 8등 관리 코발료프가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코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코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고골의 소설에서 보이는 과대망상과 정신착란 등 정신질환의 다양한 사례는 고골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고골은 정신 착란에 빠져 10일간의 단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골 사후 50년 뒤인 1901년 러시아의 정신의학자 바제노프는 이렇게 진단한다. “고골은 오늘날 과학 용어로 주기성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병의 일종,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기성 우울증으로 생의 중반기부터 말년에 이르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고통받았다.”

고골뿐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러시아의 많은 대문호들은 정신의학자들의 분석 대상이 됐다. 정신의학자들은 러시아 작가들의 정신 병리에 관한 전기적 기록, 즉 ‘병적학’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유명인들의 각종 도덕적 일화와 예술비평을 의료 진단과 섞어 쓴 이 같은 ‘병적학’을 통해 그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러시아의 정신의학은 의학의 한 분야로 제도화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이리나 시롯키나가 쓴 ‘문학 천재 진단하기’는 바로 이 ‘병적학’이라 불린 러시아 정신의학사를 소개하는 책이다. 문학과 정신의학, 이데올로기와 권력에 뒤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정신 분석이 특히 러시아에서 정신의학사의 한 조류를 형성할 수 있었던 데는 러시아 문화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이 있다. 병적학이 흥했던 19세기 러시아에서 문학은 정치 및 대중의 의견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였다. 러시아 사회에서 고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같은 작가는 사회의 목소리이자 시대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당시 러시아 지식인에게 문학비평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통로였다. 러시아 정신의학자들 역시 자신들의 작업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문학을 수용한다. 정신의학 저서를 기술하는 데 소설 속 인물들이 직접적인 예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순수문학을 그들 직업의 ‘진정한 교과서’로 칭했다. 문학비평을 통해 의학적 권위를 강화한 것이다.

문학가들에 대한 정신의학자들의 존경은 객관적 판단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가 생전 앓았던 것으로 알려지는 뇌전증(간질)에 대해 정신의학자들은 언급하기를 꺼렸다. 당시 간질이 타락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병에 대해 새로운 병명이 필요했고, 대안으로 ‘시대에 앞선 사람들(선구자)’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한편 톨스토이의 경우 그 스스로 심리치료에 긍정적이었고 이 같은 톨스토이의 철학은 훗날 정신요법과 정신분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정신의학자들이 심리 치료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유명 작가들의 정신질환에 대한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책은 오히려 19세기 러시아 정신의학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의학 역사서에 가깝다. 책의 주제가 되는 ‘병적학’이란 개념 역시 이 시기 러시아에서만 이례적으로 흥했던 분야로 정신의학사조에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최근에는 상담 등의 분야가 발달해 병적학이 다시금 활성화될 가능성도 없다. 다만 우리에게도 친숙한 대문호들에 대한 정신의학자들의 진단을 통해 정신의학과 문학이 어떻게 교유하고 서로를 이용했는지, ‘광기’와 ‘천재성’을 의학이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 나아가 의학이 어떻게 한 시대와 호응하는지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되어줄 책이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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