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몽니에 현대重·대우조선 합병 무산 위기…'빅2 개편' 물 건너가나

입력
2022.01.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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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년을 끈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번번이 기업결합 심사를 미루며 시간을 끌던 유럽연합(EU)이 결국 합병을 거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다. 합병이 불발되면 조선사 빅2 체제 개편은 물 건너간다.

EU, 합병 불허 결정…배경은?

1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AFP 등 주요 외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EU 집행위원회가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을 불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19년 12월 심사를 시작한 뒤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세 차례나 중지했다가 지난해 11월 심사를 재개했다. 두 달 전만 해도 EU의 심사 재개로 인수 작업에 속도가 붙을 거란 기대가 컸는데, EU는 결국 '독과점'을 우려해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불허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EU는 이번 주 중 심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EU가 두 회사의 합병을 반대하는 이유는 독점 때문이다. 액화석유가스(LNG) 운반선 시장의 강자인 두 회사가 합병하면 LNG선 시장 점유율이 60%에 이르는 매머드 회사로 거듭난다. EU는 두 회사가 시장 우위를 앞세워 뱃값을 올릴 것을 우려한다. 세계 3위 LNG 수입국인 EU 입장에서는 뱃값 인상이 LNG 운임에도 영향을 줘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 요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9년 3월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했다. 이후 글로벌 6개국에 기업결함 심사를 요청했고 지금까지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중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본계약이 6개국의 승인을 인수의 선결 조건으로 한 터라 유럽에서 불승인이 나면 나머지 국가(한국·일본)의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합병도 어그러진다.

매출 22조 원짜리 매머드 조선사 탄생 좌절

다만 합병 불발이 당장 두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실적 악화로 부채비율(3분기 기준)이 297%까지 치솟았지만 아직 자본(2조5,700억 원)에 여유가 있다. 최근 수주실적도 좋아 이르면 하반기부터 분기별 영업이익 흑자 전환이 예상돼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인수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자본확충에 나설 만큼 위기 상황은 아니다.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애초 투입하기로 한 1조5,000억 원의 인수 자금을 신성장 사업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규모의 조선사 탄생(매출 약 22조 원)이 좌절되고, 나아가 조선업 구조 개편이 사실상 무산되는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국내 조선산업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대형 3사 중심의 빅3 체제인데, 그간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이를 빅2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 3사가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수주전을 펼치면서 저가 출혈경쟁에 내몰렸고, 이는 결국 업계 전체에 독이 됐기 때문이다.

21년 만에 새 주인 찾기에 실패한 대우조선해양은 새 인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U가 독점을 이유로 합병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삼성중공업과의 합병도 불가능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대우조선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린 것도 장기적으로 조선업 구조를 빅2로 전환하겠다는 청사진에 따른 것이었다"며 "업계 시황이 나빠지면 3사 경쟁 체제가 다시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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