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방’의 기로에 섰다. 경제난 심화 등 통제 일변도의 방역 체계가 2년을 넘기자 국가적 피로감이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감염병 사태 이후 처음 ‘선진ㆍ인민적 방역’ 용어까지 쓴 걸 보면 방역 기조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크다. 국경이 일부라도 열릴 경우 정부가 바라는 인도적 협력도 성사될 수 있다. 첫 물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원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비상방역사업을 부단히 혁신해 나가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 비상방역 장벽을 든든히 쌓은 토대 위에 통제 위주의 방역으로부터 발전된 선진적 방역, 인민적 방역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경을 꽁꽁 걸어 잠그는, 폐쇄적 방역체계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친 셈이다. 북한 당국은 2019년 1월부터 북중 국경을 전면 폐쇄하는 등 바이러스 유입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새 방역체계 키워드로 ‘선진’과 ‘인민’을 꼽은 건 의미심장하다. 신문은 “방역부문의 물질ㆍ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갖춰야 하고, 방역기관들은 인민들의 편의 보장을 무시하는 현상을 철저히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장기화로 내부 불만이 계속 쌓이고 있는 만큼 주민들을 무작정 억누를 게 아니라 의학, 과학 등 합리적 근거를 동원해 여론을 다독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불만의 기저엔 식량난 등 경제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2016년만 해도 3.9%의 성장률을 보였던 북한 경제는 지난해 -4.5%로 폭락했다. 피폐해진 경제의 책임을 전부 코로나19에 떠넘길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온 것이다.
선진적 방역의 실행 조치로는 북중 국경 개방을 통한 무역 재개와 코로나19 백신 수용이 첫손에 꼽힌다. 방역 유지와 경제활동 재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백신 등 국제사회에 손을 벌려 보건의료 시스템을 정비하고, ‘검역 강화’를 전제로 낮은 단계부터 대외 교류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당장 ‘위드 코로나’를 적용하긴 힘들지만, 북중 국경 개방처럼 할 수 있는 것부터 이행할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다”며 “지도부의 결단이 뒷받침되면 남북 간 백신 지원이나 방역기술 협력도 기대해 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남북대화 재개를 간절히 원하는 정부도 북한의 전향적 움직임에 반색하고 있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국경 봉쇄 등 통제 위주의 방역 정책에서 조정과 변화의 조치로 이어질지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북 백신 지원과 관련해선 “구체적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