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원주민 어린이들을 상대로 ‘문화 말살 정책’을 강요했던 캐나다 정부가 37조 원이 넘는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보상금이지만 ‘만시지탄’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4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캐나다 정부는 이날 원주민단체와 400억 캐나다달러(약 37조6,000억 원)를 배상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200억 캐나다달러는 1991~1997년에 기숙학교에 수용된 피해 원주민 어린이 15만 명과 그 가족에게 지급하고, 나머지는 향후 5년 동안 원주민 보육 체계 개선을 위해 사용된다.
이번 합의는 15년간의 오랜 법적 공방 끝에 이뤄졌다. 캐나다 원주민단체들은 2007년 정부를 상대로 원주민 어린이의 인권 침해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캐나다 정부는 19세기 말부터 1997년까지 수십만 명의 원주민과 알래스카 이누이트족, 유럽인과 캐나다 원주민 혼혈인인 메티스 등을 가족들과 격리해 기숙학교에 집단 수용했다. 백인 사회 동화를 위한 언어 및 문화 교육에 따른 조치로 사실상 원주민 문화를 말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 이 문제를 조사해 온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5년 보고서를 통해 원주민 기숙학교를 ‘문화적 집단학살’로 규정하기도 했다.
'학살'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정부는 잔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원주민 아이들은 위탁시설과 기숙학교에서 영어나 프랑스어 등 서구 언어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또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열악한 시설에서 병에 걸렸으며, 학대를 당하는 등 심각한 신체적ㆍ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학대와 방치로 사망한 원주민 어린이 중 위원회가 신원을 파악한 규모만도 3,200여 명에 달했지만, 이 외에도 희생된 어린이는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2015년 취임한 쥐스탱 트리도 캐나다 총리는 원주민과의 화해를 주요 의제로 올리고 원주민 피해 사실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피해 보상 합의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로 사용된 캐나다 각지에서 1,000여 구에 이르는 어린이 유해가 잇따라 발견되고,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트리도 정부는 원주민단체와 마주 앉았다.
사상 최대 규모의 보상금 지급이 결정됐지만, 너무 늦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디 우드하우스 원주민단체연합 대변인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시스템으로 수많은 원주민 아이들이 희생됐다”며 “역사의 과오를 배상하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개탄했다.
다만 트리도 정부 들어 원주민과의 화해 시도가 가속화하는 것은 평가받을 부분으로 꼽힌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원주민에게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고, 원주민 지역 수자원 인프라 마련에 향후 9년간 60억 캐나다달러(5조5,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