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마트에는 '불닭볶음면'이 놓인 진열대 아래 또 다른 불닭볶음면이 비치돼 있다. 닭 캐릭터가 그려진 포장 디자인에 한국어로 된 제품명까지, 얼핏 보면 본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중국 현지 업체들이 저렴하게 파는 '짝퉁'이다. 완전 모방이 아니라 본품 디자인에 중국어를 추가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변화를 줘 현지 법망까지 피해가가고 있다는 게 식품업계의 지적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대표 식품기업들이 이런 중국 업체의 얌체 행위에 사상 최초로 공동전선을 펼치고 나섰다. 한국식품산업협회는 삼양식품, CJ제일제당, 대상, 오뚜기와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중국 최대 K푸드 모조품 생산·유통기업 2개사(청도태양초식품, 정도식품)를 상대로 지식재산권(IP) 소송을 제기했다고 4일 밝혔다. 소송 대상 품목은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CJ제일제당의 다시다·설탕, 대상의 미원, 오뚜기의 당면 등 9개에 달한다.
그간 한국 기업이 개별적으로 행정 단속이나 소송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단체 행동에 나서는 건 처음이다. 이는 매년 반복되는 모조품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선례를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기업끼리 힘을 합치면 소송 비용을 절감하면서 승소 확률도 높일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특히 소송 경험이 적은 기업엔 관련 노하우를 익힐 기회도 된다. 짝퉁 불닭볶음면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삼양식품은 지난해 자체 모니터링으로 온라인상 모조품 게시물 1만8,700여 건을 적발했지만, 정작 신고로 판매 중지시킨 건 1,000여 건에 그친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단속을 하면 그때뿐이고 이내 다시 기승을 부린다"며 "이번 성과에 따라 향후 다른 기업과의 공동 대응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소송 대상 중국업체는 한국기업 제품을 현지에 판매하는 중간 유통업체(벤더)로 활동하면서 모조품도 함께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공간에 본품과 모조품을 나란히 놓고 더 저렴한 모조품을 구입하게 유도하는 식"이라며 "한국기업의 신뢰도 하락은 물론 장기적으로 매출 타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식품산업협회는 지난해 초 해당 업체에 경고장을 보낸 후에도 개선되지 않자 1년간 현지 온·오프라인에서 유통되는 모조품 관련 증거를 모아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같은 날 동시에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추후 소송을 병합하지 못해도 소송 건수로 악의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중국 정부가 IP 보호 강화 기조를 보이고, 모조품 제재 판례도 나오는 추세라 승산이 있을 것이라 본다"고 기대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중국에서 국내기업 상표를 도용한 사례는 2017년 977건에서 2020년 3,457건으로 3.5배 증가했다. 최근 중국 내 K푸드 열풍이 불면서 모조품이 늘어나고 침해 대상도 상표권, 특허권, 디자인권 등 전반에 걸쳐 다양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