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 그리고, 아파도 그리고... "웹툰 연재 끝나도 불면증 시달려"

입력
2022.01.08 11:00
웹툰계 노동 현실 그린 웹툰 '바이 마이 버디' 
작가 '금고' "쉼 없는 노동에 건강 악화 다반사"
'불법사이트에 웹툰 게재된 경험 있다' 74.6%
누리꾼 "창작물인 웹툰, 정당하게 구매해야"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저도 놀랐어요.
그냥 그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공감해주시고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웹툰 '바이 마이 버디' 작가 '금고'

국내 웹툰 작가들의 노동 현실을 드러낸 단편웹툰 '바이 마이 버디'가 누리꾼들에게 화제가 되며 웹툰계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콘텐츠 이용에 따른 '정당한 지불'을 강조하며 불법사이트 이용자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다. 올해 웹툰 업계의 매출 규모가 사상 첫 1조 원을 돌파했지만 작가들의 열악한 처우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웹툰 작가의 약 70%는 차기작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지난달 26일 네이버 도전만화에 올라온 웹툰 '바이 마이 버디'는 국내 웹툰 작가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았다. 웹툰은 주인공 '안이경'이 웹툰 작가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회상하며 전개된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휴식 없이 그려야 하는 만화, 과로로 인해 얻은 건강 문제, 불법 웹툰 사이트에 올라간 주인공의 작품. '바이 마이 버디'에 등장한 이 모든 상황은 현실에서 웹툰 작가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과도 연결된다.

'바이 마이 버디'는 지난달 29일 인기급상승 웹툰 1위를 차지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웹툰 작가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불법사이트 이용자들에게 웹툰 콘텐츠의 정당한 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도대체 왜 콘텐츠를 이용하는데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는 거냐"며 "이 웹툰이 가상의 이야기가 아닐 것임에 화가 난다"(@Rakun****)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주간 연재 (작품)를 보며 좋아하고 있긴 하지만 주간 연재가 과도한 건 맞다"며 작가의 노동 부담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이 마이 버디' 작가 "산업재해와 같은 노동량"

지난달 30일 한국일보는 웹툰 '바이 마이 버디'를 그린 작가 '금고(예명)'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내 경험을 순화하고 압축해서 스토리에 담아냈다"며 창작 배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연재 말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서 노트북을 침대에 가져와서 하루종일 작업을 한다. 제가 특별해서 그런게 아니라 다른 작가 분들도 조금 덜하거나 더할 순 있지만 하나같이 다 이런 환경 속에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개인의 경험을 넘어 창작 노동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웹툰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현실에서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 간격으로 창작물을 연재해야 하는 웹툰 작가들은 엄청난 노동량을 강요당하고 있다. '금고' 작가"운이 좋으면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운이 나쁘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밤을 샌다. 완결이 나고 5개월쯤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잠을 자지 못했다"고 연재 후 후유증을 겪고 있음을 토로했다.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고,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기고, 또 암이 생긴다. 산업재해와 같은 노동량"이라며 현재의 웹툰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고집하고 있는 연재 시스템을 지적했다.


국내 웹툰 시장 매출 1조원 돌파했지만...노동 환경 개선은 아직

웹툰 작가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실제 통계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분석한 '2021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와 '2021 웹툰작가실태조사'에 따르면 작가들의 하루 평균 창작 활동 시간과 주중 평균 창작 활동 일수는 10.5시간과 5.9일로 나타났다. 창작 활동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 중 85.4%가 '연재 마감 부담으로 인한 작업시간 및 휴식시간 부족'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과도한 작업으로 정신적·육체적 건강 악화'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85.1%에 달했다.

그와 대비해 한국 웹툰 산업의 매출은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다. 2020년 웹툰 산업의 매출액 규모는 약 1조538억 원으로 6,400억 원이었던 전년과 비교했을 때 64.6%나 증가한 수치다. 2017년부터 한국 웹툰 산업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가파른 성장세에 비해 내부 노동 환경과 작가 처우 개선에 대한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내돈내툰'... "플랫폼사들의 더 적극적인 노력 필요해"

불법 유통 사이트 이용의 증가도 웹툰 작가들의 큰 고민 중 하나다. 이러한 웹툰 소비 행태는 작가의 창작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작가가 정당한 수익을 받을 수 없도록 만든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웹툰 불법 유통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5,488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1.7배 늘어났다. 웹툰 작가 710명을 대상으로 '웹툰이 불법 공유 사이트에 게재된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응답자 중 74.6%가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금고' 작가 역시 '불법 유통 사이트로 인해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올라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실상 불법 모니터링 인력을 지금보다 더 늘리지 못하면 불법 웹툰 사이트가 압박감을 느낄 수 없다"며 "작가 분들이 직접 대응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그런 역할을 웹툰 회사나 에이전시에서 해야 한다. 웹툰 회사들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걸 알지만 작가가 작품을 맡기고 수익 배분을 하는 만큼 거기에 대한 보호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웹툰사들은 웹툰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2020년 10월 웹툰불법유통대응협의체(웹대협)를 설립했다. 웹대협에 속한 플랫폼사들은 '#내돈내툰, 우리가 웹툰을 즐기는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내걸며 지난해 11월 웹툰 불법 유통 근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웹툰을 좋아하면 작가들에게 수익이 돌아갈 수 있게 현명한 소비를 해야 더 질 좋은 웹툰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며 올바른 웹툰 소비 문화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당연한 것"(@sywhite********)이라며 소비자들이 웹툰을 작가의 소중한 창작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조했다.


김세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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