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지시를 한 상사와 다툰 직후 뇌출혈로 쓰러져 숨진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유족급여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3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종환)는 근로자 A씨의 배우자가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경기 지역 한 공사현장에서 안전유도원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2월 13일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3시간 만에 숨졌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유족은 A씨가 숨지기 직전 상사인 팀장의 부당한 업무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A씨는 공사 현장 바리케이드를 옮겨 화물차가 자재를 하역할 공간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자,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팀장과 다퉜다. 원청 건설사 동의 없이 바리케이드를 이동시킬 경우 안전유도원으로 근무할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동료에게 팀장과 다툰 일을 이야기했는데, 대화를 하던 중 갑자기 "어지럽다"고 말하며 땅에 쓰러졌다.
공단은 그러나 A씨가 과거 고혈압 진단을 받은 점 등을 들어 뇌출혈이 업무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도 같은 판단을 내리자, 유족은 법원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유족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A씨는 회사에서 1개월 단위로 근로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계약하면서 단기계약직으로 근무했다"며 "고용 특성에 비춰 A씨는 팀장의 업무 지시를 거부하기가 어려운 입장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A씨는 팀장과 이견을 표출하며 공개적으로 다퉜고 팀장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제3자까지 불러오는 등 외부에 드러난 다툼의 정도도 일시적인 충돌 정도로 치부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흥분과 불안이 교차하는 심리상태를 겪었을 것이고 순간적으로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망인과 팀장의 다툼은 갑작스러운 사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단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