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부터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의 증거 능력이 제한되면서 법조계에선 '공판중심주의 강화 취지엔 공감하나,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예정된 길이라 법원과 검찰은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대응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법원은 피신조서 증거능력 제한의 여파가 크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면서도, 수사 단계에서 자백했던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사건 파악에 시간이 걸려 재판이 길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원은 공판검사의 준비서면과 수사보고서 쟁점 정리 제출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객관적·과학적 증거로 재판에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진술 의존이 높은 부패·조직 범죄 기소율은 낮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객관적 증거로 입증이 어려운 사건은 애초 기소하지 않는 게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신조서를 부인하는 피고인이 많아져 재판이 늘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속처리절차로 대응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간이 공판을 늘려 통상 공판과 '투트랙(two track)'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다수 사건을 정식 재판에 올려 판단할 경우, 신속성과 효율성이 떨어져 재판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법원행정처는 간이 공판 절차 확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관련해 지난달 국회에 찬성 의견을 냈다. 간이 공판은 증거조사 절차를 간략히 해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된다. 기존에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백해야 신청할 수 있었지만, 법이 바뀌면 검사 또는 피고인이 신청해 상대가 동의하면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법관 증원 필요성도 제기된다. 모성준 대전고법 판사는 지난 10월 '피신조서 증거능력 제한과 형사재판' 심포지엄에서 "형사단독 재판부가 매달 80~90건의 새로운 사건을 배당받는 상황에선 공판 지연이 불가피해 법관 인사운용 변화와 사법자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검찰청은 30일 '개정 형사법에 따른 검사 조사 방식 다양화' '피신조서 증거 능력 제한에 따른 공판대응' '영상녹화 조사 수사·공판 활용 사례' 등 매뉴얼을 일선 검찰청에 배포했다. 우선 피신조서는 계속 작성토록 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는다면 탄핵 증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대응책 중 하나는 '조사자 증언' 활성화다. 피의자 진술을 들은 수사관 등을 법정 증인으로 불러 당시 상황을 묻는 제도다. 그간 법원이 재판 지연 이유로 거부하곤 했지만, 검찰은 피신조서가 조사자 증언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법원에 협조를 구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실효성 의문도 나온다. 시간이 흘러 조서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기 어렵고, 수사 인력이 재판에 불려 다니다 수사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검찰은 첫 공판 전에 공범 등 주요 진술을 증거로 보전·사용할 수 있는 증거보전·증인신문청구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피고인의 진술 번복과 법정 태도도 구형에 적극 반영케 했다. 다만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증거보전청구는 법원이 예외적인 경우 받아들이기 때문에, 많은 사건에 적용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은 향후 법정에서 영상녹화가 독립된 증거로 쓰이도록 법안 개정 노력도 병행할 예정이다. 법원은 영상녹화를 법정에서 모두 재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공판중심주의가 퇴색된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최근 헌법재판소도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진술조차 법정에서 직접 증언할 경우에만 영상녹화의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결정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독일과 프랑스에선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사용한다"며 "객관적 절차를 거쳐 생성된 녹화물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개정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플리바게닝(유죄 인정 감형 협상)과 사법방해죄 등 영미식 제도 도입이 재판 지연과 공범 간 증거능력 충돌 등의 부작용을 해소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