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원해온 자캐오 대한성공회 신부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는 사회를 더욱 불안정하고 불평등하게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대선공약에 포함시켜야 하지만 차별 금지 사유에 성적지향·성별정체성까지 법제화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자 반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21일 서울 갈월동 용산나눔의집에서 만난 자캐오 신부는 차별을 막는 법을 만든다면서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집단 가운데 하나를 보호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자캐오 신부는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기독교 단체들의 연합체인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자캐오 신부는 “현대사회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도록 만든다. 불평등에 노출된 존재를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저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경쟁해야 돼’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소수만 편안하게 삶을 누리고 나머지 80%는 불평등을 서로에게 밀어내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자 뺏기 게임 멈추는 방법은 의자 하나를 더 가져와서 모두가 자리에 앉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의자를 놓는 첫 걸음이라는 이야기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논의 자체를 피하는 정치권에 대해서 쓴소리도 내놨다. 자캐오 신부는 “사회적 합의는 100명 가운데 51명이 동의하면 이뤄지고 49명이 동의하면 유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당장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체계를 만들 때 이 사람에게 얼마 주고, 저 사람에게 얼마 주는지를 다수결로 정하지 않는다”면서 “정치인들이 여론조사를 보면서 멈추거나 달리는 경주마처럼 구는데 그것은 민주주의의 굉장히 낮은 단계”라고 비판했다. 정치인들이 표만을 고려하면서 의제설정과 논의 자체를 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나눔의집은 성공회의 사회선교단체로 1986년부터 도시 빈민을 지원해왔다. 2004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성소수자 지원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창문에는 이주민과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그려져있다. 자캐오 신부는 “나눔의집은 35년 전 빈민운동을 시작한 단체로 지금까지 소유와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천착해왔다. 오늘날 한국사회와 교회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인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면서 “낯선 존재에 대한 환대와 연대는 성서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자캐오 신부가 활동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비롯해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차별을 금지하는 사유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현존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처럼 개별 집단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법으로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에게 발생하는 차별을 막거나 피해자를 구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차별 금지 사유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장혜영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법안은 성별, 장애는 물론이고 나이와 종교, 사상, 가족 형태, 병력, 학력까지 23가지 사유를 차별 금지 사유로 규정했다. 고용이나 교육, 재화와 행정서비스를 이용할 때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인을 분리하거나 배제할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해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 분리와 배제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이의제기도 가능하다.
자캐오 신부는 성서와 차별금지법의 정신이 맞닿아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성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면 ‘낯선 존재에 대한 환대와 연대’라고 답하겠다”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신은 낙인 찍혀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사적, 공동체적 안전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너희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성서와 차별금지법의 정신이 만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성서가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기독교인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자캐오 신부는 “그것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므로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자캐오 신부는 “저희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면서 ‘작고 낮고 외롭고 연약한 이들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한국사회에서 소유와 불평등의 문제에 가장 노출된 사람들이 성소수자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5장의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처럼 그들을 대해야 한다는 거죠.”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뒤따랐다. 성서가 일관적으로 가르치는 가르침에 따라서 성서를 해석해야 하고 실제로도 그래왔다는 이야기다. 자캐오 신부는 “성경에 대한 해석은 그리스도 교회 2,000년 역사 속에서 계속 바뀌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에 대한 입장이다. 성경에서 월경하는 여인은 기본적으로 부정한 존재여서 만지면 안 된다. 그가 만지는 것들도 부정해진다. 이것들은 당시에 공중보건의 맥락에서 이해됐다. 오늘날에는 여성의 월경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성소수자를 부정하게 여기는 부분, 먹어도 되는 것들을 규정한 부분도 맥락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자캐오 신부는 “성서를 근거로 반대하는 분들도 입장이 계속 바뀌어왔고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성서를 문자 그대로 적용해야 된다고 이야기하다가 반론하니까 경중이 있다고 얘기한다. 또 반론하면 이번에는 생명이 달린 문제는 하느님의 창조질서와 관련이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이라면서 물러선다. 그래서 저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자캐오 신부는 “1997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서 여성 목사와 장로를 두는 제도를 통과시켰다. 그 이전까지 대다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여성 목사와 장로 제도는 비성경적이고 그리스도교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반성경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흐름이 완전히 역전됐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토론을 통해서 (성경에 대한 해석도) 바뀔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올해 내내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정치권에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자캐오 신부는 꼭 올해가 아니라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농성장에서도 조급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법안이 꼭 필요하다는 절박함은 깔려있지만 동시에 이 법은 제정될 수밖에 없다는 강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렇 덧붙였다.
“올해 법이 제정되지 않아도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생각, 오히려 적극적으로 운동을 펼쳐가겠다는 의지들이 농성장에서 보였습니다. 절박하지만 조금도 낙담하지 않았다는 거죠. 대선 과정에서도, 그 이후에도 차별금지법의 의미를 토론할 기회가 계속 있을 겁니다. 이 싸움은 더욱 넓고 깊게 계속될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