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얼굴 없는 천사' 올해도 나타나... 22년째 선행

입력
2021.12.29 15:30
23면
23차례 걸쳐 8억872만원 기부
전주시, '얼굴 없는 천사비' 세워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나 세밑에 감동을 주고 사라졌다. 올해로 22년째다.

29일 오전 10시 5분께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남성은 직원에게 "성산교회 오르막길 부근에 있는 트럭 적재함 위에 박스를 놓았다.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심규언 동장은 "미처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고 전했다.

현장에 달려간 주민센터 직원들은 5톤 트럭 적재함에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에는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또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시고 따뜻한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힌 편지도 있었다.

올해 성금은 총 7,009만4,960원. 5만 원권 1,400장(7,000만원)과 500원짜리 동전 106개(5만3,000원), 100원짜리 동전 391개(3만9,100원), 50원짜리 동전 38개(1,900원), 10원짜리 동전 96개(960원)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2000년 4월에 시작됐다. 당시 중노2동사무소를 찾은 천사는 한 초등학생의 손을 빌려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놓고 조용히 떠났다. 이때부터 올해까지 22년간 23차례에 걸쳐 두고 간 성금을 합치면 모두 8억872만8,110원에 달한다.

전주시는 그동안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6,158가구에 현금과 연탄, 쌀 등을 전달했고, 노송동 저소득가정 초·중·고교 자녀 20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노송동 주민센터 일대 도로를 '얼굴 없는 천사도로'로 조성하고 '얼굴 없는 천사비'를 세웠다. 주민들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해 나눔행사를 펼치고 있다. 전주시는 100년 후 전주의 보물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미래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전주 최수학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