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는 ‘유전자 검사’, 은행은 ‘배달 앱’… 금융이 ‘딴짓’하는 이유는

입력
2021.12.28 21:30
뱅크샐러드, 무료 유전자 검사 '인기'
은행들도 배달앱 내놓고 이색 분야 진출
금융사들, 고객 데이터 확보 전쟁 본격화

6년 차 직장인 A씨는 최근 한 핀테크 업체에서 무료 유전자 검사를 받고 안심했다. 최근 탈모 현상을 우려했는데, 남성형 탈모에 불리한 유전자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판정을 받아서다.

A씨는 "무료인 데다 절차도 간단해 편리했다"며 "이색적인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다른 핀테크 업체보다 눈길이 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핀테크·은행 등 금융사들이 본업인 금융과 무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핀테크 업체 뱅크샐러드는 유전자 분석업체와 손잡고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시작했고, 전통 금융권에 속하는 신한은행 역시 최근 배달 앱 ‘땡겨요’를 출시했다.

뱅크샐러드가 내놓은 유전자 검사는 시작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10월부터 매일 선착순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유전자 검사에는 하루 평균 4,000명의 신청자가 몰리며 연일 '조기 마감'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신청자가 배달된 유전자 검사 키트에 타액을 담아 보내면, 약 2주 뒤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배송부터 검사까지 모든 비용은 뱅크샐러드가 부담한다.

신한은행은 지난 22일부터 배달앱 ‘땡겨요’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애초부터 ‘땡겨요’ 사업 자체는 수익 모델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중개 수수료를 업계 평균(11.4%)보다 파격적으로 낮춘 2%로 책정했다. 우리은행 역시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제휴를 맺고 이달부터 편의점 배달 서비스에 참전했다.

금융사들이 이 같은 생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색적인 서비스를 통해 '신규 고객'을 모으려는 부가적인 목적도 있다.

금융사가 고객의 유전자 검사 결과 등 건강 정보를 얻게 될 경우, 보험사 등과 연계해 고객 맞춤형 상품을 추천할 수 있게 된다. 배달앱 또한 △소비자의 소비패턴 △자영업자 매출 정보 △배달종사자의 수입 등을 얻을 수 있어 각 고객에게 특화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아직 초기단계인 마이데이터 사업이 향후 발전할 경우, 금융·건강 등 이종 데이터 간의 결합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장 수익을 낼 순 없더라도, 향후 축적된 고객 데이터 정보를 활용하면 새로운 상품 출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며 "이색 서비스를 이용해 보려고 오는 신규 고객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사의 이런 계획이 실현되기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우선 금융소비자보호법 도입으로 금융사가 고객에게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는 행위에 제동이 걸렸다. 건강과 관련된 민감정보를 금융사에 제공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 반감도 만만치 않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데이터 확보를 위한 호객행위가 늘고 있는 만큼,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위배되지 않도록 조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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