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배치한 군 병력 중 1만여 명을 전격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 문제로 미국ㆍ유럽과 러시아 간 정치적ㆍ군사적 갈등이 격화한 상황에서 나온 움직임이라 주목된다. 다만 여전히 1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우크라이나를 포위하고 있는 만큼, 당장에 긴장 완화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인테르팍스통신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군 1만 명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한 달간 훈련을 마치고 기지로 복귀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훈련은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비롯해 로스토프와 쿠반 등 러시아 남부 일대에서 진행됐다. 러시아군 관계자는 “전투 부대와 대원, 전차 부대 등에 대한 조정 절차가 완료됐다”며 “군인 1만여 명이 연합 훈련 지역에서 영구 배치 기지로 이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서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을 우려해 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부, 동부, 남부 인근에 배치한 병력은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이르면 내년 즈음 병력 17만5,000명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오히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러시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달 17일에는 긴장 해소를 위해 나토 동진 중단,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허, 러시아 국경 인근 군사력 배치 금지 등을 담은 ‘러시아 안보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와 관련해 내년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나토도 내년 1월 12일 ‘나토ㆍ러시아위원회’ 소집을 제안했고, 러시아와 독일은 내년 초 고위급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러시아군 철수에도 최근 긴박해진 외교적 움직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러시아군 철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달 7일 화상 정상회담을 한 지 2주 만에 나온 조치”라며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경고하면서 외교 채널을 통해 긴장을 낮추는 방안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4일 미 상원의원 등 주요 인사 20명과 화상 통화를 하며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말이 아닌 단호한 행동이 중요하다”며 “목표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유혈사태를 막는 것으로, 전쟁 종식 없이 유럽 안보를 상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긴장 완화를 기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철수한 러시아군 수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로버트 리는 “가장 걱정되는 지역은 우크라이나 북부와 북동부”라며 “이곳에는 러시아 중부와 서부 지구 부대가 집결해 있고 철수할 기미가 없다”고 말했다. 또 “남부 지구 부대들은 국경으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여전히 군사력을 증강할 수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