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군사작전 벌이는 건 우크라이나… 서방은 러시아 안전 보장해야”

입력
2021.12.2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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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가 약속 깨고 동진" 비난
유럽 에너지 대란 책임도 부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설’을 부인하며 최근 러시아와 미국ㆍ유럽 간 갈등이 고조된 책임을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돌렸다. “군사작전을 감행하려 하는 쪽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약속을 깨고 동진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서방은 러시아 안보를 즉각 보장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전시관 ‘모스크바 마네주’에서 연례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현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크라이나 공격 명령을 내릴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 정부에 물어 보라”고 응수하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돈바스에서 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 위치한 돈바스는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간헐적으로 충돌하는 분쟁 지역이다. 그는 “돈바스 주민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러시아는 그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중재자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두고도 서방을 탓했다. 나토가 1992년 소련 해체 이후 확장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섯 차례나 어기고 “러시아에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러시아 문 앞에 로켓을 배치하고 있다”며 “만약 러시아가 캐나다나 멕시코 국경 인근에 로켓을 배치하려 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할 건가?”라고 반문했다. 또 “우리가 그들의 국경에 접근했는가? 아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러시아 외무부는 이달 17일 미국 측에 긴장 해소를 위한 ‘안전 보장’ 제안을 발표했다. 나토 동진 금지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 등이 담겨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요구한 사항과 관련해 미국 측으로부터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면서 “내년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조치는 미국과 진행할 ‘안전 보장’ 논의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무조건적인’ 안전 보장에 달려 있다”고 못 박았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유럽 에너지 대란에 대해서도 러시아 책임을 부인했다. 러시아에서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향하는 야말-유럽 가스관이 21일 끊긴 이후로 유럽 가스 가격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천연가스 수요 40%를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있는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 삼아 서방을 압박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푸틴 대통령은 가스관을 운영하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아무 잘못이 없다며 “유럽이 가스관 추가 용량을 주문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고정적인 가격에 안정적인 가스 공급을 원한다면 가스프롬과 장기 계약을 맺으면 된다”면서 “장기 계약을 하면 가격이 3~4배, 심지어 7배까지 저렴해진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도 언급됐다. 두 나라는 미국에 맞서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는 중국과 첨단 기술 무기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며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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