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 트렌드가 만든 '리필 경제'가 진화하고 있다. 빈 용기에 내용물을 필요한 만큼 담아가는 리필 스테이션이 업태를 불문하고 증가세다. 리필 품목은 늘어나고 운영 방식은 더 기발해졌다.
기업 입장에선 소비자 체험을 통해 즉각 이미지 향상 효과를 누릴 수 있어 내년에도 관련 사업은 확대될 전망이다. 한편에선 우후죽순 리필 스테이션이 쏟아져 친환경 이미지만 소구하고 본질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에는 주로 화장품 등 생활용품이 대상이었지만 올해 리필 시장은 좀 더 다채로워졌다. 농심켈로그는 23일 서울 잠실의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에 '시리얼 에코 리필 스테이션'을 개점했다. 제품 8종 중 원하는 시리얼을 소비자가 직접 가져온 용기에 담고 무게당 가격으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리필용 자판기도 등장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 산천점이 지난 12일부터 운영 중인 '그린필박스'는 세탁세제, 주방세제 등 생활용품 3종을 개인이 가져온 용기에 리필할 수 있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월드컵점은 최근 서울시와 손잡고 세제와 샴푸를 필요한 만큼 리필해가는 친환경 매장 '제로마켓' 1호점을 열었다.
리필 스테이션은 기업의 친환경 행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오프라인 체험을 통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전해 줄 수 있다.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체의 관계자는 "비대면 시대라고는 하지만 경험의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어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며 "리필 스테이션은 소비자 경험을 극대화하면서 필환경 과제까지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별다른 평가기준 없이 기업의 재량에 따라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친환경을 과장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거짓 환경주의)'에 빠질 우려도 제기된다. 앞서 몇몇 매장은 전용 용기를 구매하도록 제한해 오히려 플라스틱 사용량을 늘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용기 안정성과 제품 변질 우려에 따라 전용 용기를 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용 용기 사용이 친환경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친환경 인증 기준은 통상 제품 위주로 적용돼 리필 스테이션 시스템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별도 용기 구입 없이 소분할 수 있는 매장을 찾는 등 소비자가 직접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소비자 스스로도 자신이 친환경적 이미지만 소구하고 있는 게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리필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시장이 커지는 만큼 보다 정립된 기준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