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서 성추행당한 우리 아이, 가해자 처벌 어렵다뇨

입력
2021.12.25 11:00
미성년자 대상 메타버스 성범죄 우려 
가해자·본사 외국이면 처벌 쉽지 않아
기업 자정 노력·국제공조수사 확대해야


온라인 가상세계 메타버스에서 미성년자들이 성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나 본사가 외국에 있거나, 입법 공백 때문에 적절한 처벌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메타버스 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운영사가 대책을 마련하거나 수사 당국이 국제공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바타 꾸미고, 대화 나누고... 메타버스는 10대 놀이터


메타버스는 미성년자들의 놀이터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는 올해 12월 기준 이용자가 2억 5,0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 이용자 비율은 약 10%(2,500만 명)라는 게 네이버제페토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만 아이디를 중복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주 이용자는 미성년자와 여성이다. 올해 1월 닐슨코리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페토 서비스 이용자 10명 중 7명은 미성년자였다. 특히 7~12세 이용자가 50.4%로 절반을 차지했다. 여성은 약 77%로, 남성(약 23%)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제페토보다는 격차가 작지만, 또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도 미성년자와 여성 이용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메타버스에서는 디지털 캐릭터인 '아바타'를 통해 타인과 소통한다. 예컨대 제페토에서는 게임머니를 투자해 아바타를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 실제 얼굴과 체형은 아바타에 반영되지 않는다. 제페토 이용자는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현실로 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식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따로 대화방을 만들어 일상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점이다.



성희롱 메시지에 아바타 간 유사 성행위까지

그러나 메타버스에 빛만 있는 건 아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주 콘텐츠이기 때문에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9월 개최한 '신종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아동·청소년 성보호 방안 논의' 간담회 정책 자료를 보면 A씨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B(14)양 아바타의 옷을 속옷만 남긴 채로 벗게 한 뒤 자신의 캐릭터와 유사성행위를 했다.

성착취물 제작과 성희롱 피해 사례도 있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C씨는 올해 4월 말~5월 초 제페토에서 "게임 아이템을 주겠다"며 여성 미성년자의 신체 사진을 전송받아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D씨는 지난해 11월 제페토 대화방에 여성 미성년자를 초대해 성희롱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①성범죄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은 미성년자들이 많고 ②설령 피해를 알더라도 고소 등 법적 절차를 밟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실제 피해 사례는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범죄 피해를 우려한 부모들의 상담도 늘고 있다. 정희진 탁틴내일 상담팀장은 "올해는 아이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부모의 대처 방안이나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 상담 문의가 더러 있었다"며 "메타버스는 아동·청소년의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약화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관련 문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메타버스의 특징인 익명성과 가파른 시장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메타버스 내 '섹스팅'(성적으로 문란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나 사진을 휴대폰으로 전송하는 행위)은 이미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성년자들이 메타버스의 익명성 뒤에서 성적 호기심을 풀기 때문"이라며 "비대면 방식이 일상을 장악할수록 메타버스 시장도 커지고, 성범죄 피해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련 기사 : "메타버스 사람 오감 자극하는 쪽으로 발전…가상세계 성폭행 등 예상 문제도 고민해야")



"기업은 자정 노력 쏟고, 수사 당국은 국제공조 확대해야"


메타버스 플랫폼 운영사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근절 대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원 서강대 메타버스대학원장은 "법 또는 정부 규제보다는 메타버스 플랫폼 운영사들끼리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며 "특정 키워드를 필터링해서 음란한 대화를 차단하는 기술을 고도화하는 등 방식도 도입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도 "운영사들이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시간과 예산을 쏟아붓듯 성범죄 등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 고도화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네이버제페토 관계자는 "미성년자들이 각종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플랫폼 내에 마련했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성범죄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기 위해 수사 당국이 국제공조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페토 이용자 90%는 해외에서 접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해자 거주지가 외국이라면 신병확보부터 어렵다. 로블록스처럼 메타버스 플랫폼 운영사가 한국에 없을 수도 있다. 메타버스의 '초국적성'이 가해자 처벌과 피해 구제를 어렵게 만드는 셈이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예현)는 "경찰이 '답이 안 온다'는 식으로 수사를 놓아버리지 않도록 메타버스 내 성범죄 수사에 관한 국제협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바타 간 성범죄에 대한 입법 공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B양 사례처럼 성인의 아바타가 의도적으로 미성년자의 캐릭터에 원치 않은 성행위를 했다면 강간 또는 유사강간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사람이 아닌 아바타에 직접적인 성교 또는 유사한 성교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 연구위원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등 메타버스라 하더라도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처벌할 근거가 있기는 하다"면서도 "아바타 간 성범죄를 기존 법으로 처벌하는 게 충분할지 등에 대한 입법 공백이 있는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준규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