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수집 30년, 집필 6년… "보통 사람들의 집에 주목"

입력
2021.12.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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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학술 부문]'한국주택 유전자' 저자 박철수

"지식이라고 하면 문사철(文史哲)로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제가 공부하는 건축학 저작물이 예심 10권 목록에 포함된 것만도 별스럽다고 생각했어요. 한 개인의 노력이 집성된 결과물을 밝은 눈으로 알아봐 주시니 세상은 아직 공정한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 수상 도서로 선정된 '한국주택 유전자'에는 저자 박철수(62)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의 36년 세월이 담겨 있다. 박 교수는 대한주택공사 연구위원으로 일하던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간 모은 자료를 토대로 이 책을 6년에 걸쳐 썼다. 1·2권 총합 1,362쪽에 이르는 '벽돌책'에는 한국 주택 100년 역사에 등장한 주택 유형 100여 종 중 대부분의 유형이 다양한 문헌 자료, 1,150점의 도판과 함께 총망라돼 있다.

병환 중이어서 지난 17일 전화로 만난 박 교수는 "한자병용 세대의 끄트머리에 자리했던 연구자로서 창고 속에 방치된 근현대 시기 기록물을 읽어야 한다는 소명 같은 게 있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그는 "한자,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모두 읽을 줄 아는 마지막 세대로서 일제강점기 이후 1970년대까지의 사료를 학문 후속세대가 보기 편하게 남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일상이 사회를 알기 위한 실마리임에도 통치 계급 역사에 비해 일반 백성의 삶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한국 건축사의 빈틈인 '보통 사람들의 집'에 주목했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책에서 일제강점기 관사와 사택에서 시작해 출현과 변이, 소멸을 반복하며 전승돼 온 한국 주택의 유전적 형질을 살폈다. 그는 아파트가 한국 주택의 절대 우세종이 된 이유를 '단지화 전략'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담장을 두른 단지 내에 입주민이 낸 분양금으로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면서 아파트가 부러움과 욕망의 대상이 됐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정부가 주거 인프라 공급 책임을 민간에 전가해 온 셈"이라며 "공공의 다세대 다가구 밀집 지역 인프라 개선이 주거 정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 책을 기반으로 후속세대 연구자들이 각 장(章)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확장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 앞서 지난 4월에 1930년대 아파트를 주제로 먼저 출간한 '경성의 아파트'(정암총서 발행)가 본보기다. "말하자면 이번에 제가 전과를 한 권 냈으니까, 각 교과목별 학습서도 출간해 달라고 후학에게 숙제를 낸 거죠. 비판할 건 하고 바로잡을 게 있으면 바로잡아 가는 과정에서 한국 건축사가 풍요롭고 촘촘하게 채워지길 바랍니다."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