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극단적 선택으로 종결했던 변사 사건이 유족의 이의 제기를 거쳐 사고사로 번복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유족 측이 재수사에 필요한 증거 자료를 치밀하게 수집해 제출한 결과인데, 일각에선 경찰의 변사 처리 절차가 범죄 여부를 가리는 데에만 치중돼 있다 보니 이런 허점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월 대전시의 한 주택에서 40대 남성 A씨가 숨진 상태로 친형 B씨에 의해 발견됐다. B씨는 동생과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집으로 찾아갔다가 A씨가 이불 위에 웅크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집 베란다에선 완전 연소된 번개탄 두 장이 발견됐고, 검안 결과 A씨의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경찰은 A씨에게 부채가 있다는 점과 A씨가 평소 우울감을 호소한 적이 있다는 주위의 증언 등을 토대로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들은 경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빚을 졌다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죽기 직전까지 노래방 사업 확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만큼 삶의 의욕이 강했다는 것이다. 또 A씨는 사망 전날 다니던 교회로 떡과 빵을 사가 교인들과 나눠 먹었고, 같은 날 밤엔 지인과 "교회에 더욱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A씨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자녀들을 두고 세상을 등졌을 리 없다고 확신한 유족들은 경찰 수사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다.
유족들은 이 과정에서 민간 탐정사의 도움까지 구해가며 수사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정황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 결정적 근거는 A씨 사망 현장을 촬영한 사진에 포착된, 번개탄 바로 옆에 뜯지 않은 고기 팩이 놓여 있는 장면이었다. 유족 측은 평상시에도 A씨가 석쇠와 번개탄을 이용해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점, 극단적 선택을 고려할 만큼 신변을 비관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입증하는 내용을 수사 이의 신청서에 담아 경찰에 제출했다.
결국 경찰은 A씨 사망 후 1년 반이 지난 올해 7월 이의 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A씨가 사고로 숨졌다고 경찰이 인정하면서, 유족들은 보험금 2억9,000여 만 원도 수령할 수 있게 됐다. 사건 재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고인이 과거에도 번개탄으로 고기를 구워 먹은 적이 있고 삶의 의지를 보였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변사 경위 수사 결과가 이의 신청으로 바뀐 이례적 사례라는 평가를 내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의 변사 사건 수사는 범죄 혐의 유무를 중시하기 때문에 타살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번개탄까지 발견됐다면 대개 극단적 선택으로 사건이 마무리된다"며 "사망 경위를 구체적으로 알고자 했던 유족 측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