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과 관련해 협정을 주도하는 일본 측에서 부정적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언론에 익명으로 역사 문제 등을 언급하며 제동을 걸 듯 나섰고, ‘한국에 대한 제재’를 주장하는 자민당 내 우익 의원은 지난 2019년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단행하면서 지적했던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라고 비난했다.
13일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에 대해 “CPTPP의 수준 높은 자유무역 규칙을 충족할 수 있는지 판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는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지난 9월 중국이 TPP 가입 의사를 표명할 당시 일본 정부가 밝힌 입장과 같다. 반면 며칠 뒤 대만이 가입 신청을 했을 때는 “일본으로서 환영한다”며 “대만은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법의 지배라는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고 긴밀한 경제 관계를 맺는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고 전혀 다른 입장을 보였다.
교도통신은 또 이 관계자가 “한국의 CPTPP 가입에는 일본 국민의 이해도 필요하다"며 징용 문제와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 등 “한일 간에는 여러 현안이 있다”고 신중한 견해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 등 한일 역사 갈등 현안을 한국의 CPTPP 가입과 연계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CPTPP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이 TPP를 탈퇴하고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자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체결한 다자 간 자유무역협정이다. 앞서 우리 정부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CPTPP 가입 추진 의사를 밝혔다. 홍 부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CPTPP 가입을 위한 여론 수렴과 사회적 논의에 착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CPTPP 가입은 주도국 일본을 포함한 11개 기존 가맹국이 모두 찬성해야 승인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한국의 CPTPP 가입 조건으로 경제와 무관한 역사 문제를 전면에 내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한국이 도입한 일본 수산물 등에 대한 수입 규제 철폐를 요구할 가능성은 있다. CPTPP 가입을 희망하는 영국도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를 푸는 절차를 밟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최근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 후 한국에 대해 여러 분야에서 제재를 해야 한다며 자민당 내 별도 회의체까지 만든 우익 성향의 사토 마사히사 의원은 한국의 CPTPP 가입 신청 결정 소식에 “후안무치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트위터에 “한국의 현 정권은 후안무치! TPP 가입신청 전에, 일본이 지적한 수출 관리 시정이 먼저”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TPP는 높은 수준의 경제 규칙 동맹이고, 일본을 포함해 비준한 어느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가맹교섭을 할 수 없다”면서 “국내 운영체제 정비가 먼저다. 어리석다”고 비난했다. TPP 가입을 신청한 행위 자체를 비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