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열망

입력
2021.12.14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미혼인 남자 후배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의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거주한다. 아침 일찍 나와 밤늦게 들어가니 10여 년을 그렇게 살면서도 불편함은 없었다고 했다. 이놈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습격하기 전까지는.

거실이 있다지만 일상이 된 재택근무는 두 식구에게 방 두 칸을 좁게 만들었다. 후배는 툴툴거리며 잠자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반드시 분리돼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다. 이제는 무리를 해서라도 널찍한 방 세 칸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본의 아니게 자가격리를 한 올해 10월 초 공간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11일간 방 안에만 갇혀 밥을 먹고 노트북을 두드린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아직까지 흡연자라 더 힘들 것이란 자책도 쌓여 갔다.

'국민 평형'에 세 식구라 좁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베란다 확장으로 큐브에 갇힌 듯한 게 문제였다. 창밖으로는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었다. 마당 있는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꿈을 꿨다. 공간의 압박으로 불안감이 가중되니 다른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옥상 일부를 쓸 수 있는 맞은편 최상층 복층아파트가 눈물 나게 부러웠다. 결심했다. 이사를 간다면 마당 있는 집, 아파트라면 테라스가 있거나 최상층이다.

2년간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주거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집은 먹고 자는 것은 물론 교육의 장이자 여가를 즐기고 운동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까지 하는 공간으로 격상됐다. 넓고 편안한 집이 교육 성과와 재택근무 효율도 높인다. 인테리어 기사의 몸값이 뛰고 집 꾸미기 앱이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하다. 올 하반기 1, 2차 사전청약에서 전용 60㎡ 이하 신혼희망타운이 외면받은 배경에는 좁은 면적도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1인 가구인 청년층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혼자일수록 좁은 원룸에 갇혀 생활하는 게 더 힘들다. 최근 주변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산 젊은 미혼 후배들이 적지 않다. 안정적인 거주공간에 대한 열망과 치솟는 집값으로 인한 불안감이 작용했다고 한다.

1인 가구가 본격적으로 집을 산다는 건 주택시장에 큰 변화다. 혼자 원룸 등에서 거주→결혼해 전세로 이동→아이 낳고 청약으로 내 집 마련, 이 공식이 깨졌다. 통계청이 얼마 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는 664만3,000가구에 이른다. 전체 가구 중 31.7%다. 연령대는 20대(19.1%), 30대(16.8%), 40대(13.6%)가 절반(49.5%)을 차지한다. 비혼 확산이 1인 가구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몇 년 전에는 부부가 주택 분양을 받았다면 이제는 1인 가구가 청약에 뛰어든다. 급격히 증가한 청약 경쟁률, 고질적인 주택 공급 부족도 1인 가구를 제외하고는 논할 수 없다. 또한 비혼 1인 가구에겐 나중에 노동소득이 끊겨도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집의 가치가 더 커졌다. 좋은 집이야말로 가장 안정적 증식이 가능한 자산이자,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부상했다.

'청년에게 임대주택 우선 공급, 1인 가구는 소형 평형 위주'처럼 틀에 박힌 정책은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연간 몇 가구 공급보다 어떤 집을 공급하느냐가 중요해졌다. 1인 가구 증가세를 감안하면 변화는 가속될 것이다. 넓고 좋은 집, 자산 증가까지 기대할 수 있는 집을 바라는 게 죄는 아니니까.

김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