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맹주·대통령 연임' 노리는 佛 마크롱… "강력한 유럽 만들 것"

입력
2021.12.10 20:00
2022년 상반기 EU 의장국 역할 앞두고 포부 밝혀
내년 4월엔 재선 도전 예상... '유럽의 지도자' 강조
선거운동 호재 가능성... 역내 갈등 수습 실패 땐 '독'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강력하고 자주적인 유럽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세계 패권을 다퉈 온 미국과 중국에 밀려 왔던 유럽연합(EU)의 힘을 키우겠다고 강조하면서 역내 맹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 것이다. 마침 프랑스는 내년 상반기(1~6월) EU 순회 의장국을 맡을 예정이고, 대통령 선고도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마크롱 대통령으로선 그간 ‘유럽의 지도자’로 활동하다 최근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빈자리를 꿰차는 동시에, 내년 4월 재선에 성공하려면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완전히 자주적이며, 선택에서 자유롭고,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는 유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차기 EU 의장국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유럽의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강조한 발언이다.

역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난민 갈등’과 관련, 마크롱 대통령은 ‘국경 보안 강화’를 해법으로 내놨다. 그는 “국경에서 위기를 맞는 EU 국가들을 돕기 위한 비상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EU 회원국들이 정기적으로 이주 문제를 논의할 협의체를 창설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의 국경 간 자유 이동 체제인 ‘솅겐조약’ 재수정 가능성도 언급했다.

또,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EU 자체 안보 강화’을 재차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에 닥친 여러 위기에 대해 역내 국가들이 한데 뭉쳐 막아야 한다”며 “유럽인으로서 함께 행동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승리 후 ‘EU가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 방위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프랑스는 미국 영국 호주의 대중국 안보동맹 ‘오커스(AUKUS)’ 창설로, 종전에 호주와 맺었던 77조 원 규모 잠수함 계약이 무산되는 바람에 미국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 경제 정책도 내놨다. 그는 “각국이 코로나19 여파로 대규모 지출을 하는 만큼,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미만으로 제한한 규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내년 3월 ‘새로운 유럽 성장모델 구축’을 위한 임시 정상회의 개최 △산림벌채 대응 EU기구 창설 △소셜미디어 혐오 콘텐츠 규제 강화 등의 추진도 공약했다.

프랑스의 EU 의장국 역할은 내년 4월 재선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마크롱 대통령에겐 상당한 호재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외신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EU 의장국 임기 중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도 불구, 이를 마다하지 않은 건 재선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EU 의장국은 선거운동 막판에 ‘유럽 지도자’로 자신을 소개하려는 마크롱 대통령의 열망에 부응한다”고 전했다.

다만 기회는 독이 될 수 있다. AP통신은 “EU 의장국으로서의 공약은 반대로 프랑스 내부 이슈에 대한 관심을 옅게 할 수 있다”고 짚었다. WP도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한 의제는 EU 내 경쟁적 국가 이익과 복잡한 절차 등으로 수렁에 빠질 수 있다”며 “역내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면 EU 의장국 임기 종료 때 그가 프랑스 대통령이 아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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