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잼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5세 아들의 질문에 고완석(39)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은 말문이 막혔다. "주로 게임 방송에서 미숙하고 못하는 사람에게 '너 잼민이지?'라고 물어요. 그 뒤엔 보통 'X져'라는 말이 붙죠. 아동들이 디지털·미디어상에서 자신들을 비하하는 말을 아주 쉽게 마주치고 있다는 거예요."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굿네이버스 본사에서 만난 고 팀장은 "미디어에도 어린이보호구역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늘날 아동은 말 그대로 '디지털 네이티브(원주민)'다.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게 더 이상 놀랍지 않다. 문제는 미디어 세상 속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동을 보호할 안전망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본 적이 없는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더니 '탕!' 하는 총소리를 내더라고요. 아이들이 살아가는 디지털·미디어 세상을 들여다봐야겠다, 그럴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올해 굿네이버스가 띄운 '미디어 어린이보호구역'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먼저 '미디어 속 아동 다시보기' 캠페인을 통해 미디어가 아동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점검에 나섰다. 최근 언론에서도 자주 쓰는 '○린이'라는 표현이 대표적. 초보자라는 의미로 어디든 갖다쓰는 이 말이 '어린이=미성숙하고 서툰 존재'라는 편견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팀장은 "미디어 콘텐츠 생산자의 아동권리 감수성을 높이는 게 우선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환경에서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대목. 지난 10월부터 펼치고 있는 '마르지 않아도 좋아요!' 캠페인은 아동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미디어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획이다. "SNS상에서 청소년 간 우울을 공유하는 계정 '우울계'나 '개말라', '뼈말라' 등 검색어로 마른 몸을 향한 집착을 부추기는 콘텐츠가 성행해요. 우울한 아이들에게 우울한 메시지가 뜨고, 다이어트를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깡마른 몸을 전시하는 게시글이 자동으로 뜨죠." 고 팀장은 "SNS상 아동보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며 "아동이 거식증 등 특정 단어 검색 시 노출을 제한하거나 SNS에 다이어트 관련 허위광고를 제한하는 등 제도적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아동의 참여다. 성인이 짐작하는 미디어 세상과 아동의 그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어서다. 고 팀장은 "아동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동시에 아동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굿네이버스는 100명의 미디어 아동 자문단을 꾸려 이들의 목소리를 캠페인에 담아내고 있다.
2006년부터 굿네이버스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두 남매인 자녀에게서 곧잘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평소에 '아이를 얻고 삶이 일이 됐다'고 이야기해요. 우리 아이가 살고 있고, 살아가게 될 세상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걸 일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죠. 건강한 미디어 세상을 만드는 건 결국 우리 아이를 위한 일이거든요."
아이들에게서 스마트폰을 떼어놓는다고 될 일이 아닌 만큼 "몇 시간 하느냐, 이용시간을 제한하기보다는 뭘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어차피 미디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아동의 온라인 안전을 보장하고, 이들의 디지털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 어린이보호구역'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정책 제언에도 본격 나설 계획이다. "어린이 권리는 디지털 세상에서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