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증가에 정부 미적... 전세자금 보증요건 확대 '지지부진'

입력
2021.12.10 11:00
'수도권 5억→7억, 비수도권 3억→5억' 조정 계획
3분기에서 4분기로 연기했지만 연내 시행 불투명
'가계대출 관리' 영향 탓 분석도

올해 안에 추진한다던 주택금융공사(주금공)의 전세자금 보증요건 상향 계획이 수개월째 공회전하고 있다. 전세가격 급등으로 실제 시장 가격이 보증한도를 속속 넘어서고 있어, 세입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0일 금융당국과 주금공 등에 따르면 전세자금 보증요건을 올해 안에 수도권 7억 원, 비수도권 5억 원으로 확대하겠다던 계획이 아직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상향 계획 밝혀놓고, 보증금 지급 한도는 '그대로'

전세자금 보증제도란 특정한 담보물이 없는 세입자들을 위해 주금공 등 보증기관이 은행에 대출보증을 서주는 제도다. 현재 주금공은 수도권 기준 5억 원, 비수도권 기준 3억 원 전세까지만 보증을 서준다. 그러나 최근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보증요건과 시장 사이에 괴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금융위원회는 보증요건을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애초 올 3분기 안에 보증요건을 확대하려다가 주금공이 내부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시행시점을 4분기로 늦췄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질지 미지수다. 주금공 관계자는 “연내 시행을 위해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확한 시행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보증요건 상향이 늦어지는 이유는 사고 발생 시 세입자들이 주금공으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는 실제 보증금 한도(전세지킴보증)가, 수도권 5억 원, 비수도권 3억 원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전세지킴보증 한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보증요건만 상향해 봐야, 세입자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들어 7억 원짜리 전셋집을 얻은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어도, 이 세입자는 주금공으로부터 최대 5억 원까지만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주금공은 보증요건 완화와 전세지킴보증 한도 조정 시기가 일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주금공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세지킴보증 한도를 늘리려면 한국주택금융공사법 시행령이 개정돼야 하는데, 이는 국무회의 의결 사항이다.

가계부채 문제 불거지자 '미온적' 분석도

업계에서는 고승범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금융당국의 기조가 ‘강력한 가계부채 관리’로 바뀌면서 애초 계획과 달리 보증요건 완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증요건을 확대하면 그만큼 전세대출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위는 올해 5월 보증요건 확대와 반환보증 한도 상향 조정을 함께 발표했는데, 이를 의결해야 할 국무회의에는 아직 관련 안건이 상정된 적도 없다.

일정 지연에 따른 불편함과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들이 떠안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지난해 8월 이미 5억 원을 넘어섰고, 올해 3월에는 6억 원을 돌파했다.

전세가는 그 뒤로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6억6,000만 원까지 올랐다. 상당수 세입자들이 주금공을 통해 전세보증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무회의는 매주 열리기 때문에 올해 안에 (관련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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