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이 서울시가 의료 약자인 노숙인에 대한 진료비 지원 예산을 삭감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여전한 상황에서의 예삭 감액은 "노숙인 목숨을 깎는 것"이라며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35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기획단)은 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위중한데도, 서울시가 노숙인 의료예산을 지난해보다 10% 감액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에 분석에 따르면 서울시의 내년 노숙인 의료지원 예산은 46억7,730만 원으로 올해(52억1,456만 원) 보다 약 5억4,000만 원이 줄어들었다. 해당 예산은 크게 노숙인 무료 진료소 운영비와 노숙인 진료비 지원으로 나뉘는데, 삭감된 항목 대부분이 진료비 지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줄어든 예산 약 5억4,000만 원 중 4억8,474만원이 진료비에 해당했다.
서울시는 최근 4년동안의 진료비 지원 집행액 평균에 근거에 예산을 줄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단체들은 이는 타당하지 않은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날 참석한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부터 노숙인 진료시설지정병원 대부분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됐다"며 "실제 의료지원 수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도 "현실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책상머리에 앉아 진료실적이 적으니 예산을 깎겠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세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예산 삭감이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시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올해 3월 인권위는 "동상에 걸린 노숙인 환자가 제대로 된 의료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지정병원 이외의 진료도 허용하는 등 노숙인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서울시에 권고했다. 단체들은 이를 언급하며 "평균 집행액을 근거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양대 인권기구의 권고를 사실상 불수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획단은 서울시가 노숙인이 겪고 있는 의료공백 현실을 인정하고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규진 위원장은 "지정병원을 늘리든가, 아니면 차라리 지정병원 제도를 없애고 민간병원이 노숙인의 이용을 불허할 경우 이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