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무단협 사태가 두 달 넘게 지속돼 온 SBS가 창사 이래 첫 파업에 돌입한다. 우선 6일부터 일주일간 보도 부문부터 멈춰 서게 되면 뉴스 프로그램의 차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럼에도 노조가 파업을 불사한 이유는 사장과 보도·편성·시사교양 부문 최고 책임자에 대한 직원들의 '임명동의제'를 사수하기 위해서다. 임명동의제 폐기를 노조에 요구한 사측은 단체협약까지 해지하는 초강수를 뒀다.
SBS 노조는 임명동의제 유지와 단협 복원을 내걸고 파업에 나선다. 지난달 22~28일 이뤄진 투표에선 재적 인원의 91.4%(936명)가 참여해 이 중 86.6%가 파업으로 한뜻을 모았다. 2017년 노사 합의로 국내 방송사 최초 도입된 임명동의제는 공정방송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게 SBS 구성원의 시각이다. 4대강 사업, 한일 위안부 합의 보도에 정권 우호적 지침을 내리는 등 개입하고, 방송을 사유화했다는 의혹을 낳은 윤세영 당시 SBS 미디어그룹 회장이 사퇴하면서 남긴 유산이 임명동의제다. 사장과 편성·시사교양 본부장의 경우 재적 인원의 60% 이상, 보도본부장은 해당 인원의 50% 이상이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소유·경영 분리 일환이다.
SBS시청자위원회도 최근 "임명제 동의안은 유지돼야 한다는 게 시청자위원 다수의 견해"라는 입장을 냈다. "임명동의제는 노사 간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 내용과 편성에 있어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SBS가 시청자·규제기관·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 약속"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해 말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3년 재허가를 받은 후 "전 세계 언론사 어디에도 도입한 곳이 없다"며 임명동의제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 1월 단체협약상 임명동의제 삭제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 왔고, 4월 단협 해지를 일방 통고했다. 사측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6개월 뒤 단협이 사라지는 이른바 '단협 해지권'을 행사한 것. SBS는 10월 3일부터 무단협 상태에 놓였다. 이 기간 19차례 노사 간 교섭과 노동위원회 조정도 결렬되면서 노조는 파업 절차를 밟게 됐다.
정형택 전국언론노조 SBS 본부장은 "사측이 재허가 심사를 앞두곤 규제기관 눈치를 보느라 임명동의제를 도입하더니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되자 단협까지 해지하고 노동 탄압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조합원뿐 아니라 전체 재적 직원의 과반 이상 반대를 얻어야만 부결되는 임명동의제는 작동 자체가 어려운데도 사측이 무리하는 배경에는 대주주의 반노조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공정방송은 방송노동자의 핵심적 근로 조건이지만 사측은 오직 대주주 1명만을 바라보며 임명동의제를 없애려 한다"는 게 노조 입장이다.
파업 지침에 따라 6일 0시부터 12일 자정까지 '8 뉴스'의 앵커 4명을 포함한 보도 부문 조합원 340명이 파업에 참가한다. 보도본부, 아나운서팀, SBS A&T 영상취재팀, 영상편집팀, 보도기술팀, 뉴스디자인팀 소속 조합원들이다. 파업 첫날은 '모닝와이드' 1부와 '10 뉴스', '12 뉴스', '뉴스 브리핑', '오뉴스', '나이트 라인'이 결방하고, 70분 방송하던 '8 뉴스'는 40분으로 축소 편성된다. SBS 관계자는 "방송 시간이 줄거나 보직자 등 비조합원으로 대체해 뉴스가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능·드라마 제작은 기존대로 유지한다.
사측은 지난 3일 편성·시사교양본부장은 제외한 보도본부장에 대한 임명동의제와 중간평가 등을 유지하겠다는 안을 노조에 내놓았다. 하지만 노조는 국민과의 약속인 임명동의제는 거래 대상이 아니고, 단협 복원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조는 6일 오전 파업 출정식을 가진 후 국회와 방통위, 청와대 등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일주일간 1차 파업에도 사측이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전면 파업까지 강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