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일가가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미등기임원으로 계열사에 재직한 경우가 176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5곳에 미등기임원으로 있으면서 1년간 약 124억 원을 수령했다. 전자투표제 등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확대됐지만,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등 실질적인 견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62개 공시대상 기업집단 소속 2,218곳(상장사 274곳) 중 총수 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한 경우는 176건이었다. 이 중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사각지대 회사에 이름을 올린 사례가 49건(27.8%)이었다.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까지 합하면 96건으로 절반이 넘는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총수일가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 재직하면서 권한과 이익은 향유하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은 회피하려 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 구성원인 등기임원과 달리 미등기임원은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등기임원 중에선 이재현 회장(123억7,900만 원)이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이어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5개 회사에 미등기임원으로 있으면서 53억8,000만 원을 챙겼다. 공정위가 미등기임원 보수를 취합해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시대상 기업집단 상장사 274곳 중 집중·서면·전자투표제를 하나라도 도입한 회사는 216개사(78.8%)였다. 전년(147개사)보다 크게 늘었다.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이 같은 제도를 하나도 도입하지 않은 곳은 효성·하이트진로·넷마블 등 58개사였다.
그러나 경영진 견제 장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공시대상 기업집단 이사회 상정 안건 대부분이 원안 가결(99.62%)됐으며, 상품·용역과 관련한 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341건) 모두 원안대로 처리됐다.
해당 내부거래 중 340건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졌음에도 이사회 안건에 수의계약 사유조차 기재하지 않은 경우가 72.4%에 달했다. 사실상 실질적인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성 과장은 “제도적 장치 운영 측면에서 지배주주·경영진을 견제하는 데 미흡한 부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