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구원하겠다"… '프랑스 트럼프' 대선출마 공식화

입력
2021.12.01 07:58
18면


프랑스 극우 성향 평론가 에릭 제무르(63)가 “프랑스를 구원하겠다”며 차기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공식화했다. ‘프랑스판 트럼프’로 불리는 그는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 온 인물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제무르는 이날 오후 유튜브에 공개한 9분 분량의 사전 녹화 영상에서 “프랑스에 이민이 늘어나면서 ‘진짜 프랑스’가 사라졌다"고 말하며 대선 출마 의향을 밝혔다. 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난하며 “이제는 프랑스를 개혁할 때가 아니라 구원할 때”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제무르는 대선 후보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대표보다 수위 높은 발언을 노골적으로 쏟아내 온 인물이다. 올해 9월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 지지율이 두 자릿수까지 올라 한때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맞붙은 르펜 대표를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서 제무르는 “당신은 당신이 알던 프랑스에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고, 조국에 있으면서 외국인처럼 느끼고 있다”며 “내면에서 당신은 망명자”라고 강조했다. 또 자신이 프랑스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의 딸들이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지 않아도 되고, 우리의 아들들이 순종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구식 마이크를 앞에 둔 채 연설문을 읽어내려가는 제무르는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 참여를 독려했던 드골 장군의 연설 장면을 연상시키도록 노력했다고 AP통신 등은 설명했다.

인종을 차별하고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제무르는 유대인이며,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인종 차별과 혐오 발언으로 프랑스 법원에서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빠른 속도로 지지율이 상승할 때만 해도 극우 대통령 후보는 르펜 대표가 아닌 제무르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지만, 최근 보여준 기행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전날에는 남부 마르세유에서 자신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린 여성을 향해 똑같이 대응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박제'돼 구설에 올랐다. 앞서 한 박람회에서는 총기를 들고 기자를 겨눠 논란이 됐고, 여성 보좌관과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대중지 보도도 그의 평판에 영향을 미쳤다.

해리스인터랙티브가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 1차 투표에서 제무르를 뽑겠다는 응답은 전주보다 4%포인트 하락한 13%로 집계됐다. 마크롱 대통령을 뽑겠다는 응답이 23%로 가장 많았고, 르펜 대표가 19%로 그 뒤를 따랐다. 우파 공화당(LR)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그자비에 베르트랑 오드프랑스 의장이 14%로 3위였다.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가 진출하는 결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르펜 대표, 제무르와 맞붙으면 각각 54%, 60%로 승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이번 여론조사는 제무르가 출마 선언을 하기 전인 11월 26∼29일 18세 이상 성인 2,071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에서 이뤄졌다.

허경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