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영국 여왕의 ‘신하’ 상태에서 벗어났다. 독립 55년 만에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모시는 입헌군주제를 공화정으로 전환한 것이다. 20여 년간 계속된 공화제 전환 추진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본 셈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샌드라 메이슨 바베이도스 총독은 30일 0시(현지시간)를 기해 신생 공화국 바베이도스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메이슨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 국민은 바베이도스 공화국에 정신과 실체를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의 국가이자 국가의 수호자이다. 우리는 바베이도스”라고 외쳤다.
이날 ‘공화국 바베이도스’의 새 출발 현장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대신해 찰스 왕세자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찰스 왕세자는 “바베이도스 공화국 탄생은 새로운 시작”이라며 “(영국과 바베이도스의) 역사를 영원히 더럽힌, 끔찍했던 노예 제도 시절부터 이 섬의 사람들은 비범한 불굴의 의지의 길을 걸어 왔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다만 “바베이도스 공화국이 선포되는 순간, 찰스 왕세자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고 덧붙였다.
바베이도스의 공화국 전환은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55년 만의 일이다. 바베이도스는 17세기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66년 11월 30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으나, 영연방 국가로 남아 영국 여왕을 군주로 섬겼다. 오랜 식민지 경험으로 영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탓에 ‘리틀 잉글랜드’로 불리기도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바베이도스는 자국 출신인 세계적 팝가수 리애나(33)에 ‘국가 영웅’ 칭호를 수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베이도스가 공화정으로 거듭난다고 해도 영연방에는 계속 소속될 예정이다. 국가원수가 엘리자베스 여왕에서 메이슨 대통령으로 바뀔 뿐, 실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많지 않다. 영연방은 영국 국왕을 정점으로 했던 국가연합체의 성격보다는 이제 ‘동창회’와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연방 회원국의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 의무’도 1949년에 이미 폐지됐다. 로이터통신은 “현지 주민들 중에서는 되레 바베이도스가 왜 공화제로 전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고 전했다. 영국과의 ‘완전한 결별’까진 아니라는 얘기다.
영연방 국가들 가운데 바베이도스의 공화제 전환은 1992년 모리셔스의 공화제 도입 이후 약 30년 만이다. 리처드 드레이턴 영국 킹스칼리지 교수는 자메이카와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등에서도 공화국 전환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특히 영어를 사용하는 카리브해 국가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