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그러는 건 자연스러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의아하다.”
여론ㆍ선거를 연구하는 국승민 미국 오클라호마대 교수는 한국일보 화상 인터뷰에서 여야의 2030세대 남성 표심 잡기 경쟁을 이렇게 평가했다. 국 교수는 “20대 남성은 반(反)더불어민주당 성향이 워낙 강해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별로 없다”며 “국민의힘 거부 정서가 강한 데다 부동층이 많은 2030세대 여성을 놔두고 민주당이 왜 어려운 길을 가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국 교수는 "'이재명도, 윤석열도 싫다'는 게 2030의 정치적 성향이지만, 탈이념 성향인 것도 아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가장 강한 것도 2030"이라고 분석했다. 또 "세대 내 성별 특성이 명확하게 갈리는 것도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특징"이라며 "'민주화 대 산업화'의 구도로 2030을 분석하려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국 교수는 대선후보들에게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 방정식’을 짚어 보라고 제언했다. “보수로 여겨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실 이민 등 일부 이슈에 대해서만 급진적이었을 뿐 정부 지출 삭감 등 공화당의 전통적 의제에는 반대했다”며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보다 더 중도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게 트럼프가 이긴 결정적 배경”이라고 했다.
다음은 지난 25일 진행된 일문일답.
-2030세대가 내년 대선의 캐스팅보터로 떠올랐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하는 대선후보가 없다는 부동층 비율이 2030세대 사이에서 가장 많다. 정치적 성향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세대이기도 하다.”
-2030세대가 탈진영ㆍ탈이념 성향이 강하다는 뜻인가.
“그런 의미는 아니다. '탈이념'이란 표현은 맞지 않다. 60대 이상의 '산업화 서사'와 4050세대의 '민주화 서사'의 틀에서 탈이념적이지만, 2030에게도 각종 이슈에 대한 정치적 태도가 있다. 기성 문법과 다를 뿐이지 이념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2030의 정치적 성향을 어떻게 해석하나.
“20대와 30대 모두 40, 50대에 비해 문재인 정부 지지가 약하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60대 이상에서 가장 낮고, 그 다음 낮은 것이 2030세대이다. 딱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재명도, 윤석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게 지금 2030의 정치적 성향이다. 특히 20대 여성 사이에서 이런 성향이 뚜렷하다. 20대 여성은 국민의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데, 그렇다고 민주당도 딱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않으니 어느 당도,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
-올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20대 여성의 15.1%(방송3사 출구조사)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아닌 제3후보를 선택했다.
“대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20대 여성이 요구하는 것은 페미니즘과 차별금지법 등 소수자 보호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부담스러워하는 의제다. 민주당은 이 의제들을 껴안는 순간 다른 세대의 표를 잃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 최근 여론조사 자료를 보면, 40대 이상 세대에서 페미니즘 거부 정서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20대 여성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은 20대 여성의 정치적 응집력이 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대선후보나 세력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다시 결집할 것이다."
-이재명ㆍ윤석열 후보 모두 2030 여성보단 2030 남성의 표심을 공략하는 데 적극적이다.
“2030 남성은 민주당, 2030 여성은 국민의힘에 대한 거부 정서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국민의힘이 2030 남성을 공략하는 건 자연스럽다. 민주당도 그러는 건 의아하다. 2030 남성이 민주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어차피 희박하다. 최소한 이번 대선까지는 어렵다. 부동층이 많은 2030 여성을 놔두고 왜 저렇게 어려운 길을 가는지 의문이다."
-요즘처럼 정치권이 2030세대에 주목한 적이 없는다. 최근 정치권의 2030담론을 어떻게 평가하나.
“ ‘민주화 대 산업화’의 틀로 2030을 이해하면 안 된다. 2030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역대 대통령 중 2030이 가장 호감을 갖는 건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그러면서도 반북한ㆍ반중국 성향이 강하다. 얼핏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4050처럼 민주당을 굳건히 지지하는 세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또 다른 특징은 세대 내 정치적 정체성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남성은 개인 자유를 중시하는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 성향이 강하고, 20대 여성은 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한다. 다른 세대에선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다.”
실제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대(18~29세) 남성의 36%가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이는 60대 남성 내 진보층 비율(19%)보다 낮은 수치다. 반면 20대 여성의 30%는 진보층이라고 답했고, 보수층 비율은 18%였다.
-편의상 2030으로 묶지만, 20대와 30대도 정치적 성향이 다른 것 같다.
“30대는 20대와 40대의 징검다리 성격이 강하다. 가령 30대 남성도 20대 남성처럼 반페미니즘 성향이 강하다. 20대 남성은 이 반페미니즘 성향과 정치적 지지가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30대 남성은 덜 그렇다는 차이가 있다.”
-한국 2030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 미국도 비슷한가.
“그렇지 않다. 한국과 미국의 2030을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는 미국에선 성별 간 정치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성별 불문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점이다. 미국 2030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ㆍPC)’ 성향이 강하다. 다인종 사회이다 보니 소수자 권리 의식이 강하다. 기후변화를 가장 우려하는 세대기도 하다. 한국의 20대 여성과 비슷하다.”
-그러면 미국엔 ‘이준석 현상’ 같은 게 없나.
“민주당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 의원이 있지만, 이준석 현상과 비교하긴 어렵다. (지난 2018년 29세 최연소 나이로 연방 하원에 입성한 코르테스 의원은 청년, 여성, 이민자 집단을 대변하며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공화당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흉내 내는 젊은 정치인이 있긴 하다.”
-이번 대선은 비호감 선거라 불린다.
“2016년, 2020년 미국 대선과 비슷하다. 먼저 비호감 대선이라는 점에서 2016년이 떠오른다. 트럼프와 힐러리 모두 비호감도가 높았다. 강력한 진영 선거라는 점에선 2020년 미국 대선과 비슷하다. 민주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무너뜨리겠다며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후보로 내세웠다. 바이든이 후보로 선택된 건 온건ㆍ중도 이미지 때문이 아니다. 백인, 남성, 베테랑 정치인이라는 조건을 지닌 바이든이 트럼프를 꺾을 최적의 카드로 보였기 때문이다. 공화당 진영은 ‘트럼프를 지켜야 한다’며 똘똘 뭉쳤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상대 당에 대한 비토 정서가 매우 강하다. 각 진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생각이 강하고, 이재명ㆍ윤석열 후보가 상대 후보를 꺾을 최적임자로 낙점됐다.”
-이번 대선의 중대 변수를 꼽자면.
“중도층의 규모가 꽤 크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도 중도층이 이탈하며 시작됐다. 트럼프라고 하면 보수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주자 중 가장 중도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았다. 클린턴과 비교해도 트럼프가 더 중도적이라고 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민, 인종 등의 이슈에 대해서만 급진적이었지, 정부 지출 삭감, 사회 안전망 지출 감축 등 공화당의 전통적 노선엔 모두 반대했다. 트럼프가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던 배경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재명ㆍ윤석열 후보 중 누가 정책·태도 면에서 온건하고 중도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이 될 것이다.”
-대선 승부를 전망한다면.
“'투표율'과 '2030 여성 표심'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전망도 달라질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은 비호감 선거였지만 투표율은 높은 편이었다. 이번 한국 대선의 투표율은 높지 않을 거라고 보는데, 결과가 궁금하다. 둘째, 2030 여성의 선택이다. 2030 남성 상당수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2030 여성들은 제3의 후보로 갈지, 이재명 후보 손을 들어줄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