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투기 근절 목적으로 정부가 2017~2018년 시중 은행들을 대상으로 가상계좌 신규 제공을 중단하도록 한 조치가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각하 판단을 내렸다. 각하는 본안 판단에 앞서 소송·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해 재판을 끝내는 것이다.
헌재는 25일 정부의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이 위헌이라며 정모 변호사 등이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각하) 대 4(위헌) 의견으로 각하했다.
다수 의견(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및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금융위원회가 2017년부터 내놓은 가상화폐 투기 근절 대책이 헌법소원 대상인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정부는 2017년부터 가상화폐 투기를 막기 위해 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정부는 비트코인 가격이 1,700% 가까이 상승할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이자, 2017년 12월 두 차례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개최했다. 금융위원회는 같은 달 28일 은행권 및 가상통화 거래소를 상대로 시중 은행들에게 가상계좌 서비스의 신규 제공 중단을 요청했다. 금융위는 이듬해 1월엔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 중 금융부문 대책’을 발표했다.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 실시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골자였다.
재판관들은 당시 정부 조치가 금융기관에 대해 자금세탁 등 우려가 있다는 점을 알리면서 이른바 ‘실명확인 가상계좌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시중은행 등에 방향을 제시하며 자발적 호응을 유도하는 일종의 ‘단계적 가이드라인’이라고 봤다. 해당 조치들이 일방적인 금융당국의 조치가 아니라서 헌법소원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반면,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은 해당 조치들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시중 은행들이 해당 조치를 위반했을 경우 시정명령ㆍ영업정지 요구ㆍ과태료 등 제재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 ‘가이드라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금융당국 조치들이 기본권을 제한할 소지가 큰 데도 법률조항에 근거를 두지 않아 ‘법률유보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