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美 20조 '반도체 투자' 매듭…시스템반도체 1위 향한 여정 시작

입력
2021.11.24 15:06
12면
1년 고심 끝에 이재용 美투자 마침표
삼성전자 파운드리 존재감 확 커질 듯
시스템반도체 2030 비전 목표 속도
이재용 "시장의 냉혹한 현실 보고 왔다"

20조 원 규모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부지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로 최종 낙점됐다. 삼성전자의 해외 단일 투자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이로써 2030년까지 '세계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을 목표로 내건 삼성전자의 중장기 전략 추진에도 가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1년 고심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조 투자 매듭

삼성전자는 24일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2공장 부지로 테일러시를 확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고심해 온 삼성전자의 미국 내 제2 파운드리 프로젝트도 마침표를 찍게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기간에 미국 투자계획을 깜짝 발표했지만, 오너 부재 등에 따른 이유로 공장 부지 선정도 지연되면서 세간의 우려도 높아졌다. 이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국 출장길에 나섰고, 20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美에 첨단공장 건설

테일러시에 삼성전자 제2 파운드리가 둥지를 틀 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역시 현지에서 제시된 막대한 인센티브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첨단 공장을 짓는 대가로 받는 세제 혜택 규모는 10억 달러(1조2,0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기존 오스틴 사업장과의 거리가 25㎞ 정도로 가깝고, 주변에 미국 최대 컴퓨터(PC) 제조사인 델 본사 등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가 위치한 부분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내년 상반기 첫 삽을 뜨게 될 테일러시의 삼성전자 반도체 신규 공장의 가동 목표 시점은 2024년 하반기다. 이곳에선 5세대(5G) 이동통신,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반도체가 생산될 것이란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신규 라인엔 5나노미터(1나노=10억분의 1) 중심의 첨단 파운드리 공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5나노 공정은 현재 삼성전자가 상용화한 공정 중 가장 앞선 공정이다. 삼성전자의 기존 미국 내 오스틴 공장은 14나노 공정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힘 받는 '시스템반도체 2030' 비전

테일러시에 들어설 반도체 파운드리 기지에 대한 삼성전자의 기대는 상당하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선 절대강자로 통하지만 신시장으로 부각된 파운드리 분야에선 여전히 고전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기관인 대만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대만 TSMC가 52.9%로 1위를 고수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17.3%에 그쳤다. 지난 2019년 4월 "굳은 의지와 열정으로 반드시 해내겠다"며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고 공언한 이 부회장의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감안하면 기대 이하의 중간 성적표다.

하지만 이번 테일러시 반도체 파운드리 투자는 삼성전자에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줄 전망이다. 현재 파운드리 큰손들은 미국 내 빅테크 기업과 반도체 설계 전문인 팹리스 업체다. 삼성전자가 새 첨단 공장으로 존재감을 키우면 얼마든 새 고객사를 유치할 기회도 커진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내년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1세대 3나노 칩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약 삼성전자가 TSMC보다 3나노 칩 양산을 먼저 하면 '첨단 칩 수주전'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벌써부터 삼성전자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 실적이 내년에 사상 최고치를 달성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내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매출이 창사 이후 처음으로 100조 원 시대에 들어설 것이란 전망을 내놓으면서다.

이 부회장 "시장의 냉혹한 현실 보니 마음 무거워"

이날 오후 4시쯤 귀국한 이 부회장은 취재진과 만나 "오래된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은 출장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에 따른 향후 전망을 묻는 질문엔 "투자도 투자이지만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되니까 마음이 무겁더라"고 토로했다. 이미 자립 경쟁에 들어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치열한 현주소에서 확인된 위기의식으로 해석된다. 때문에 이 부회장이 이번 미국 출장을 계기로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서면서 '뉴삼성' 만들기에 전력을 다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이 부회장은 미국 현지의 삼성 선행 연구조직을 찾아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가자"며 '뉴삼성'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뉴삼성 일환으로 삼성전자가 조만간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란 전망 또한 제기된다. 최근 외신에선 시장가치만 580억 달러 규모의 네덜란드 자동차 반도체 기업인 NXP가 삼성전자의 전략적 목표에 부합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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