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용역 계약 정수기 기사, 근로자 해당... 퇴직금 지급해야"

입력
2021.11.23 15:30
'서비스 용역 계약' 맺어 형식상 독립 사업자
엔지니어들 "사실상 회사 전속돼 근로 제공"
1·2심 '근로자성' 인정 않았지만 대법서 반전

정수기 설치·수리기사들이 회사와 용역 위탁계약을 맺고 형식상 ‘독립 사업자’로 일했더라도 사실상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해 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청호나이스 엔지니어로 일하다 퇴직한 A씨 등 2명이 청호나이스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청호나이스와 서비스용역 위탁계약을 맺고 정수기 등 가전제품 설치와 애프터서비스(AS), 판매 업무를 하다가 계약을 종료했다. 계약서에는 “수탁자(엔지니어)는 위탁자(청호나이스)와 근로관계에 있지 않으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고유 사업을 영위하는 독립 사업자이므로 퇴직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A씨 등은 그러나 근무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청호나이스에 전속돼 근로를 제공했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받는 종속적 관계에 있었다”며 각각 3,100만 원과 1,850만 원의 퇴직금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은 엔지니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회사의 취업규칙, 복무규정, 인사규정 등이 원고들을 비롯한 엔지니어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엔지니어들에게 출퇴근 의무가 없는 점, 신입 교육 등이 강제사항이 아니란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항소심도 1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청호나이스가 엔지니어들 중 선임 관리자격인 SM(시니어 매니저)을 통해 사실상 업무 관련 지휘와 감독을 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청호나이스가 SM을 통해 엔지니어 팀별 ‘제품 매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SM도 엔지니어별로 매출 목표를 설정하고, 수시로 확인하며 실적 부진 시 질책하거나, 교육 참석·휴무일 근무 등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매출 촉진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엔지니어들이 회사에 전속돼 수수료를 주된 소득원으로 받았던 점, 취업규칙 등의 적용은 안 받지만 ‘엔지니어 10대 행동강령’ 등 별도 지침 준수를 요구받았던 점을 언급하며 “위탁계약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론 엔지니어들이 종속적 관계에서 청호나이스에 근로를 제공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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