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관리 압박을 강화한 뒤부터 은행권이 대출금리를 과도하게 높이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불만이 지속되자 금융당국이 진화에 나섰다. '문제를 촉발한 당국이 뒷짐만 지고 있다'는 시장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19일 이찬우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주요 시중은행 임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대출금리 산정체계 운영상황을 점검했다. 예정에 없던 이번 간담회에는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SC·씨티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이 참석했다.
이 부원장은 "대출금리가 하반기 이후 오름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예금금리도 오르고 있긴 하지만 상승폭이 대출금리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각 은행의 대출금리 산정 및 운영이 모범규준에 따라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이 급히 시중은행을 호출한 이유는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를 놓고 금융소비자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대출금리는 무섭게 올라 최저 연 3%대 후반에서 최고 연 5%대까지 뛰었는데, 이는 불과 3개월 만에 1%포인트 가까이 높아진 것이다. 반면 예금금리는 기준금리 상승분(0.25%포인트)을 제외하면 거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에 예대금리차는 11년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금융당국은 기본적으로는 이 같은 상황이 금리 인상기에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측면이라고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전날 "최근의 금리 상승은 글로벌 신용팽창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로 접어들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긴축과 기준금리 인상 경계감 등으로 국채·은행채 등 준거금리가 오른 영향이 큰 만큼 당국의 대출규제 강화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당국 책임과 은행권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시장의 금리 결정에는 개입할 수 없다'던 기존 태도에서 한발 물러난 모습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최근 수차례 "정부가 시장 가격인 금리 결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어렵다"며 단호하게 입장을 밝혀왔지만, 이날 시중은행의 예대금리 산정 과정을 점검함으로써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출금리가 과하게 오르지 못하도록 압박을 준 것이다.
금감원은 조만간 은행들로부터 여·수신 금리 결정 자료를 받아본 뒤 후속조치를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원장은 이날 간담회 종료 후 "금리는 시장 자금 수급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는 대원칙은 바뀌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자료를 받아본 뒤 분석해서 문제가 있다면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국의 의무"라며 개입 가능성을 열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