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임의로 제출받은 피의자 휴대폰에서 원래 수사 대상 외 범죄 단서를 포착했어도 피의자 참관 등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8일 준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확정했다.
청주의 한 대학교수인 A씨는 2013~2014년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술 취한 제자들 신체를 휴대폰으로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은 2014년 피해자인 B씨가 현장에서 빼앗아 임의제출한 A씨 휴대폰 두 대 중 한 대에서 B씨 사진 등을 확보했다. 이후 나머지 휴대폰 한 대에서도 2013년 다른 제자들의 신체를 촬영한 동종 범행의 사진을 확인했다.
이번 판결에선 △임의제출된 저장매체 내용에 대해 압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임의제출된 저장매체 탐색과정에서 피의자의 참여권 보장이 필수적인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됐다. 1심은 A씨의 모든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압수수색 절차를 문제 삼아 2014년 범죄만 유죄로 판단하며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날 "피해자 등 제3자가 피의자가 소유·관리하는 정보저장매체를 제출한 경우, 범죄혐의사실과 연관된 전자정보만으로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4년 피해를 입은 B씨가 제출한 휴대폰에서 확보한 2013년 범죄의 단서는 '범위를 초과한 위법한 압수수색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휴대폰 등에는 사생활의 비밀 등과 관련한 모든 것이 저장돼 있어 제한 없이 압수수색을 허용할 경우 피의자 인격권이 현저히 침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대법원은 "영장 없이 임의제출된 정보저장매체의 경우 (수사기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의자에게 참여권 등 절차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최근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불거진 휴대폰 등 압수수색 위법 논란과 연결해 해석한다. 앞서 대검찰청 감찰부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권순정 전 대검 대변인이 사용했던 공용 휴대폰을 영장 없이 임의제출받아 참관 없이 포렌식했다. 이에 권 전 대변인은 "압수수색이 영장 없이 이뤄졌고, 포렌식 역시 참관하지 못했다"며 반발했다. 지난 16일에는 공수처가 사건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와 관련,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했는데 손 검사 역시 "참관 없이 이뤄진 위법 절차"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자녀 입시비리 혐의로 상고심 재판을 앞둔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사건과 맞닿아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 전 교수와 검찰은 임의제출된 PC의 증거 능력을 두고 법정 공방을 진행 중이다. 다만 PC가 정 전 교수의 소유물이 아니었다는 점 등 이번 전원합의체 사건과는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제3자가 낸 정보저장매체의 제출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피의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