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가 한 달여의 잠행을 깨고 공개활동을 재개했다. 그런데 첫 행선지가 의미심장하다. ‘혁명성지’이자 ‘백두혈통’의 심장부인 양강도 삼지연이다. 김 위원장의 역점 사업인 대규모 주택단지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기도 하다.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첫해 성과를 독려하는 동시에 집권 10주년을 맞아 ‘수령 김정은’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적 행보로 풀이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6일 김 위원장이 삼지연시 건설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 보도는 지난달 11일 국방발전전람회 연설 이후 35일 만으로 올 들어 가장 긴 은둔이었다.
백두산 인근에 위치한 삼지연은 김 위원장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각별한 지역이다. 북한 당국은 2018년부터 삼지연을 ‘산간 문화도시의 훌륭한 표준’ ‘이상적인 본보기 지방도시’로 재개발하고 있다. 2019년 12월 말 1, 2단계 공사를 통해 ‘수천 가구’ 주택이 지어졌다.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삼지연시 주택단지 전경은 마치 유럽 소도시를 연상케 하는데, ‘스위스 유학파’인 김 위원장의 취향이 한껏 반영됐다는 평이다.
김 위원장의 삼지연발(發)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예사롭지 않다. 그는 “삼지연 건설에서 축적한 우수한 경험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확대시켜 지방건설 발전과 문명한 전 사회 건설을 다그치는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삼지연처럼 다른 지역 건설 사업도 분발하라는, 일종의 압박이다. 최고지도자가 인민 주거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는 ‘애민’ 이미지도 챙길 수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첫해 성과를 선전하는 측면과 집권 10년이 되는 해 인민생활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의 하나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삼지연은 김 위원장의 ‘정통성’을 적극 부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북한은 백두산이 있는 삼지연을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투쟁 성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지로 선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그간 삼지연 방문을 전후해 굵직한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것도 이곳이 통치 정당성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지도부가 최근 김 위원장을 ‘수령’으로 자주 지칭하는 등 유일영도체계 강화에 골몰하고 있는 만큼, 삼지연 중간점검은 성지 의미를 상기하려는 목적이 크다는 분석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삼지연 방문 사실 자체가 주민들에게 수령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