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영화 감독의 단편영화 멘토링은 서로에게 윈윈"

입력
2021.11.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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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조합 대표 민규동 감독

민규동 감독은 요즘 바쁘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과 ‘허스토리’(2018) 등을 연출한 그는 본업보다 촬영장 밖 일로 분주하다. 제작자로 ‘새해전야’와 ‘보이스’를 올해 개봉시켰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대표로 특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DGK 대표로서 공동위원장을 맡아 충무로영화제를 꾸리고 있다. 여러 사업을 통해 외연을 넓히고 내실을 다지고 있다. 2018년 민 감독이 윤제균 감독과 공동대표가 된 후 DGK가 탈바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민 감독을 만나 DGK의 사업, 영상산업 급변기 DGK의 역할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민 감독이 대표가 됐을 때만 해도 “DGK 통장계좌에는 80만 원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사무국 직원은 1명. “다음 달 월급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정도로 재정 구조가 불안정했다. DGK는 2005년 출범했다. 국내 감독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친목 성격이 더 강했다. 회비 납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민 감독과 윤 감독은 회원 정비에 나섰다. 회비를 내야만 회원 자격을 부여했다. “이익집단으로서 조합의 정체성을 명백히 드러내자”는 생각에서였다. 민 감독은 “회비를 낸 만큼 건강검진, 법률 상담 제공 등 여러 혜택을 돌려드리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DGK는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 CJ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스토리업(단편영화 제작 공모 및 지원사업),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사업, 웹드라마 아카데미 등 멘토링 사업이 대표적이다. 특히 스토리업은 미래 인재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업 지원자가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DGK 소속 장편영화 감독이 조언해준다. 지원자가 개발한 시나리오 중 6편을 선정한 후에는 촬영, 편집 등에 대한 의견을 들려준다. 민 감독은 “장편영화 감독들이 노하우나 교훈을 전해주는 형식이지만 오히려 그들이 젊은 세대로부터 영감을 얻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스토리업 사업에 선정된 단편영화들 중 주요 영화제 수상작 등은 스토리업쇼츠 단편영화 정기상영회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민 감독은 “장편영화 연출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영상산업 재편을 주도하는 시기, DGK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민 감독은 “예전에는 감독들이 드라마 연출을 잠깐 외출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확실한 목표(본연의 작업)로 보고 있다”며 “(변혁기에) 감독 저작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계에서는 감독이 저작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민 감독은 “미국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작사가나 작곡가처럼 감독들이 저작권료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며 차기작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업영화 감독 대부분이 10년가량 작품을 못 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회원 정비와 사업 강화로 DGK 재정은 많이 나아졌다. 사무국 직원은 4명으로 늘었고, 직원 월급은 인상됐다. 회원은 두 배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DGK 대표는 여전히 무보수다. 민 감독은 “곳간에 뭔가가 쌓이면 분쟁이 있기 마련이라 무보수가 맞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머니도 마음도 홀가분하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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