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가 11일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역사결의)’를 채택했다. 1945년 마오쩌둥, 1981년 덩샤오핑에 이은 중국 역사상 세 번째 역사결의다. 시진핑 주석은 “중화민족 부흥의 핵심”, 시진핑 사상은 “중국 정신의 시대적 정화(精華)”라고 한껏 띄우며 내년 가을 3연임을 통한 장기집권 채비를 마쳤다.
역사결의 키워드는 단연 ‘시진핑’이었다. 관영 신화통신이 나흘간의 회의 결과를 요약해 공개한 7,500여 자 분량 공보에서 시진핑이라는 단어는 17차례 등장했다. 공보는 “당이 시진핑 동지의 당 중앙 핵심, 당 핵심 지위,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한 것은 전군과 전 인민의 공통된 염원을 반영했다”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역사를 추진하는데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전했다. 공산당은 2016년 10월 18기 6중전회 때부터 공식적으로 시 주석에게 ‘핵심’이라는 호칭을 부여해왔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시 주석의 핵심적 지위를 확고하게 명시함으로써 시진핑 중심의 ‘집중통일영도(1인 통치) 체제’로 중국 공산당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고 평가했다.
공보는 이어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당대 중국 마르크스주의,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중화문화와 중국정신의 시대적 정화로 마르크스주의 중국화의 새로운 도약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시진핑 사상이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에서 가장 우월한 지도이념이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중국의 부활과 힘, 부유함을 시진핑과 당의 업적으로 돌리려는 역사적 승리주의 찬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 주석의 역사결의는 1921년 공산당 창당 이후 100년간 투쟁으로 이룬 주요 업적과 역사적 경험을 종합적으로 다뤘다. 과거를 부정하며 유일통치체제를 확립한 마오나 문화대혁명의 잘못을 부각시켜 개혁·개방의 정당성을 강조한 덩과 차별화한 부분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과거 역사결의에서 마오는 중국을 세우고 덩은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면 시진핑은 강한 중국을 표방한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앞서 역사결의를 발표한 두 전임자에 대한 평가는 사뭇 대조적이다. 공보는 마오쩌둥에 대해 “중국 발전의 신기원” “굴욕외교 종식” 등 온갖 후한 평가를 늘어놓았다. 반면 덩샤오핑에 대해서는 “개혁·개방의 역사적 결정”이라고 존중하긴 했지만 눈에 띄는 인상적인 표현이 없다. 분량도 덩샤오핑의 후임인 장쩌민, 후진타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시 주석이 신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의 계승자라는 뉘앙스로 읽히는 대목이다.
앞서 8월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당의 역사적 사명과 행동가치' 문건에서 톈안먼 사태를 "1989년의 정치 풍파"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날 공보에 과거 사건에 대한 언급이나 자기반성의 통렬한 문구는 없었다. 향후 100년간 중국 공산당이 추구할 목표로 ‘공동부유’를 처음 제시하긴 했지만 빈부 격차 등 중국이 처한 구조적 문제도 애써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은 지난 100년간 인민과 역사에 우수한 답안을 내놓았다”며 완전무결함을 강조하는데 상당한 비중을 할애했다.
홍콩과 관련, “혼란에서 정치로의 중대한 전환을 추진했다”며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으로 바꿨다”고 자화자찬했다.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독립 분열 행위와 외부 세력의 간섭을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를 통해 세계적 대격변 속에서 위기를 이겨내며 위대한 도약을 했다”고 설명했다. 6중전회에 앞서 중국 관영매체들은 시 주석을 “뛰어난 결단력, 탁월한 전략적 사고, 과학적 의사결정 능력을 갖춘 위대한 정치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공보는 “내년 하반기 20차 당대회를 열 것”이라며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과 제2의 100년 목표를 향한 새로운 장도에 진입하는 중요한 시점에 개최되는 중대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당대회는 시 주석 3연임을 확정 짓는 자리다. 이어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으로 굳게 단결해 어제의 고난이 부끄럽지 않도록 내일의 꿈을 걸고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로써 시 주석 장기집권을 위한 모든 정치적 준비를 마쳤다.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을 필두로 7월 청두유니버시아드,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 등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축제 분위기를 띄울 일만 남았다. 다음 주 열릴 미중 정상회담은 시 주석의 위용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영국 더타임스는 “시 주석이 황제 대관식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마오가 시작한 혁명의 계승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고 평가했다. 미 CNN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구절을 인용해 “시 주석은 과거와 현재, 미래 세 가지 모두를 지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