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초점] 알파벳으로 얼룩진 배우들

입력
2021.11.15 08:51
온라인의 '뜨거운 감자' 된 이니셜 폭로, 대중 피로도 짙어지는 이유
폭로자에게 실명 거론 요구 거세게 일기도

최근 연예계 화두는 '폭로'다. 알파벳으로 가려진 실명에 대한 네티즌들의 추리는 또 다른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폭로자에게 실명 공개의 의무를 묻기도 하지만 과연 폭로자들에게 '의무'라는 단어가 옳은지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일각의 예시로 배우 허이재는 한 유튜브에 출연해 과거 방송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남자 배우로 인해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가 역풍을 맞았다. 허이재는 "폭로할 경우 후폭풍도 알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성관계 요구와 이를 거절할 경우 욕설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폭로는 연예계를 뒤흔들었다. 허이재가 언급한 특징들로 함께 작품을 했던 남자 배우들이 구설에 같이 올랐기 때문이다. 논란이 점점 커지자 허이재는 "그때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녹음이나 녹취, 이러한 증거가 없다"면서 실명을 밝히지 않겠다는 입장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최근에는 코미디언 출신 노유정이 전 남편 이영범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두 사람 모두 화두에 올랐다. 노유정과 이영범은 지난 1994년 결혼했으나 2015년 이혼한 바 있다. 노유정은 "결혼 파탄의 씨앗"이라며 이영범이 이혼 전 한 여배우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해당 여배우의 나이와 출연 드라마가 간접적으로 밝혀지면서 각종 추측이 흘러나왔다. 이에 이영범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외도는 사실무근"이라고 수습했다.

폭로에 실명 없어도 법적 처벌 가능

폭로자들 모두 자신의 발언이 큰 파장으로 이어지리라 예상했을 터다. 실제로 형법 제307조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진실을 알렸더라도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면 처벌 대상이 된다.

특히 해당 인물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특정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된다. 다만 공인을 향한 폭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비방의 목적이라면 처벌 가능성이 있다. 단적인 예시로 최근 김선호의 스캔들을 폭로한 전 여자친구 A씨 역시 사적인 감정으로 글을 게시했기 때문에 명예훼손 고소 가능성이 있다.

처벌 가능성, 공익 혹은 비방 따라 달라져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에서는 명예훼손죄가 더 엄중하게 적용될 수 있다. 형법은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공공의 이익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언급한 사실이 국가나 사회 일반 다수인의 이익 내지는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폭로자에게 쏟아지는 실명 공개 요구

쏟아지는 알파벳 배우들과 폭로에 대한 사회적 파장 우려는 짙다. 무분별한 폭로와 의혹 제기 속에서 사실을 구별하는 것 역시 대중의 피로도를 증가시킨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이름 하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며 무고한 피해자까지 양산한다.

이러한 이유로 혹자는 폭로자에게 가명이 아닌 실명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가십성 폭로의 특성상 무분별한 의혹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로자에게 실명을 밝힐 '의무'가 있을까. 폭로에 대한 법적 책임은 누구도 대신 짊어지지 않는다. 오롯이 폭로자에게 돌아가는 무게감이기에 함부로 책임감을 논할 수 없는 이유다. 보복성 폭로였다면 법적으로 각자의 책임을 지면 된다. 하지만 제3자가 폭로자에게 실명을 밝히라며 압박을 가하는 것은 2차적인 가해와 다름이 없다.

우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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