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이 코로나19 피해로 벼랑 끝에 선 소상공인을 제2금융권으로 몰아내고 있다는 국책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정책 부작용으로 자영업자들의 고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지면서 부실 대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자영업자 부채의 위험성 진단과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88조5,000억 원(8월 기준)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12월보다 173조3,000억 원(21.3%) 증가했다. 이는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지적받은 일반 가계대출의 증가율(13.1%)보다 1.6배 빠른 속도다.
대출의 질도 나빠졌다. 올해 8월 금융권별 개인사업자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이 15.5%(전년 동월 대비)로 가장 높았다. 은행 대출 증가율(6.5%)의 2.4배에 달한다.
지난해 9월까지 마이너스였던 저축은행 가계대출 증가율은 같은 해 12월 7.9%에 이어, 올해 3월 13.1%→6월 17.5%→8월 15.5%로 두 자릿수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에 개인사업자들이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자 가계대출 명목으로 2금융권에서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자의 사업자 대출 증가율도 마찬가지다. 8월 기준 증가율은 2금융권인 보험·상호금융이 26.8%로 가장 높았다. 특히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0.9%였던 저축은행 대출 증가율이 올해 들어 20% 문턱까지 치솟았다. 역시 2금융권인 캐피털 대출 증가율도 20%를 넘었으나 은행 대출 증가율은 그 절반인 11.3%에 그쳤다.
고금리업권 대출 증가율은 △음식업(26.9%) △개인서비스업(20.9%) △제조업(11.5%) 순으로,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업종일수록 높았다. 오윤해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총량관리 등으로 은행권 자금공급을 제한한 게 개인사업자의 고금리 대출을 크게 늘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이 빚을 끌어다 쓰며 연명하는 와중에 대출규제로 시중은행의 문턱이 높아지자,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로 몰렸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자영업자 채무구조 개선과 부실 위험 방지를 위해 고금리 대출에서 장기상환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상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 2016~2017년 정부의 정책 자금 수혈을 받은 개인사업자의 경우 저금리 자금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폐업확률은 10% 낮아지고, 매출·고용인원은 각각 28.8%, 22.5% 증가했다.
KDI는 다만 정책 자금 수혈도 경영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생 가능성이 낮은 사업자의 경우 정책금융이 오히려 개인 채무 부담을 늘리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연구위원은 “회복이 어려운 자영업자는 취업교육·재창업 컨설팅 등 부채 증가를 막으면서 원활한 폐업을 돕는 쪽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