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찾아간 보험금' 12조원 돌파… 알고도 놔두는 가입자까지 있다?

입력
2021.11.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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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지급 대상인데도 인지 못하는 경우 많아
조건 좋은 저축성보험은 일부러 안 찾기도
'내보험찾아줌'에서 일괄청구 가능하도록 개선

#. 2000년 예정이율이 8%였던 생명보험 상품에 가입한 A씨는 지난해 보험 만기가 도래했지만 일부러 보험금을 찾지 않고 있다. 약관에 따르면, 만기 후 3년 동안은 예정이율에 1%포인트를 더한 9% 이율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시대, 10% 가까운 금리를 생각하며 A씨는 계약 소멸시효 시점까지 보험금을 그대로 둘 작정이다.

보험 지급 사유가 발생했거나 만기가 도래했지만 찾아가지 않고 있는 '숨은 보험금'이 올해 8월 기준 12조3,971억 원에 달했다.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중도 보험금'은 8조7,303억 원, '만기 보험금'은 3조43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만기 후 2~3년이 지나 더는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하는 휴면보험금도 여전히 6,238억 원가량 남아 있다.

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내보험 찾아줌' 사이트를 통해 편리하게 보험가입 내역과 숨은 보험금을 통합 조회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거액의 보험금이 쌓여 가는 이유는 '잊어버려서'다. 통상 10~30년을 장기 납부하는 보험상품 특성상 정작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해도 소비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드물긴 하지만 A씨의 사례처럼 과거 조건이 좋은 상품에 가입해둔 덕에 이른바 '부리(附利)'를 노리고 고의로 보험금 수령을 늦추는 사례도 있다. 주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저축성 보험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수가 많진 않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빨리 보험금을 찾아가도록 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불편한 청구 과정도 숨은 보험금이 쌓이는 데 일조한다. 그동안 소비자는 온라인으로 보험금 조회를 하더라도 이후 지점을 방문하거나 보험사에 전화해 추가 절차를 밟아야 했다. 상담전화 연결에만 3영업일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1,000만 원 이하 소액 보험금은 인터넷에서 조회부터 청구까지 한 번에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기로 했다. 추가 정보 확인이 불필요한 경우 청구 금액이 자동으로 지급된다. 금융위는 "조회된 숨은 보험금을 일괄 청구할 수도, 일부만 선택적으로 청구할 수도 있다"며 "다만 본인 명의의 계좌로 본인만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3일 오후 2시부터 내보험 찾아줌 사이트에서 일괄청구가 가능해진다"며 "숨은 보험금 중에서도 만기 후 2~3년이 지난 휴면 보험금은 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에 바로 찾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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