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산유국 사우디, '2060년 탄소중립' 선언했지만… 화석연료 퇴출엔 '선 긋기'

입력
2021.10.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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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공동 목표 2050년보다 10년 늦어
화석연료 감축·퇴출도 배제… 진정성 의문
COP26 의장 "파리협약보다 합의 힘들 듯"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구촌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2060년 탄소중립 달성, 2030년 탄소 배출 감축량 2배 증가’라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사우디가 온실가스 주범인 화석연료 생산국이라는 점에서 일단은 환영할 만한 조치다. 다만 구체적 로드맵이 없고, 화석연료 퇴출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탓에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많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날 열린 ‘사우디 녹색 계획(SGI)’ 포럼에서 “2060년까지 사우디의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 2030년까지 연간 탄소 배출 감축량 목표를 종전(1억3,000만 톤)보다 두 배나 많은 2억7,700만 톤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를 위해 1억9,000만 달러(약 2,234억 원)를 투자하고, 24개국이 2030년 메탄가스 배출량 30% 감축에 합의한 ‘글로벌 메탄 서약’에도 참여키로 했다.

사우디가 이달 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막하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를 앞두고 이 같은 의지를 밝힌 건 고무적이다. 하지만 목표 시기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대다수 국가가 제시한 2050년보다 10년이나 늦다. 앞서 사우디처럼 2060년을 목표로 내건 중국과 러시아도 ‘기후위기 대응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화석연료 감축·퇴출도 단호히 거부했다. ‘섣부른 정책 전환은 오히려 가격 폭등과 연료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속내는 뻔하다.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10%를 차지하는 사우디의 올해 석유 수출액은 1,500억 달러(176조4,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 능력을 확대하면서 (우리 회사는) 2050년 탄소중립을 자체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앞뒤가 안 맞는 어불성설이다. AP통신은 “사우디의 탄소중립 목표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투자를 줄이거나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춘다는 말이 없다”며 “사우디는 에너지 시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우디가 대안으로 언급한 건 탄소 포획·저장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겉으로만 친환경적으로 비칠 뿐,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회피하면서 화석연료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꼼수’라는 지적을 받는다. 더구나 사우디는 친환경·재생에너지 개발도 매우 뒤처져 있다. 첫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4월, 첫 풍력발전소는 8월에서야 가동을 시작했다. 비영리기구 ‘기후변화추적’이 사우디의 기후변화 대응 수준을 최저 등급인 ‘심각한 불충분’으로 매겼을 정도다.

사우디를 비롯, 각국의 탄소중립 목표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COP26에도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 회의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이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파리에서 약속한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조율하는 자리다. 알로크 샤르마 COP26 의장은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시험에서 어려운 문제는 건너뛴 상태에서 답안지 제출 전 남겨 둔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는 상황”이라며 “회의 결과를 도출해 내기가 6년 전 파리협약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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