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인도네시아 생산공장 건설에 참여했던 소규모 한인 업체와 현지 업체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현대차와 계약한 1차 하청업체가 도면을 추가로 보내면서 비용이 급증했는데도 550만 달러(약 65억 원)에 달하는 대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1차 하청업체 간 편법 계약 의혹도 제기됐다. 현대차는 "하도급 간 계약 문제"라는 입장이다.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피해를 주장하는 곳은 한인 업체 1곳, 현지 업체 3곳 등 최소 4곳이다. 이들은 현대차가 설계, 조달, 제작 및 설치를 일괄 처리(EPC)하는 계약을 맺은 국내 업체 D사의 하청을 지난해 3월 최저가 입찰로 따냈다. 의장공장과 도장공장의 설계는 자동차 컨베이어장치 설계 및 제조업체인 D사가 하고, 현지 제작과 설치는 이들이 맡는 식이다.
문제는 지난해 8월부터 불거졌다. 도면에 없던 물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업체들의 부담이 커졌다. 업체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지난해 12월 D사는 현대차 중재로 1차 합의를 했다. 도장공장 일을 맡은 A사 대표 장모(50)씨는 "원래 720톤이던 물량이 788톤으로 늘어난 부분에 합의하는 과정을 현대차가 중재했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합의 회의록을 보면 참관인 자격으로 현대차 직원 3명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이후에도 도면이 추가로 왔고 도면에 없는 물량까지 들어왔다. 올해 3월에는 처리할 총 물량이 950톤으로 늘었다. 장씨는 "D사 측에 수십 차례 공문을 보내고 하소연을 해도 추가 비용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1차 협상을 중재했던 현대차 역시 올해 5월 공장이 완성되자 '나 몰라라' 식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업체들이 주장하는 피해 금액은 A사 350만 달러, 나머지 3곳 200만 달러 등 우리 돈으로 약 65억 원이다. 자재 공급 업체 34곳(한인 업체 18, 현지 업체 16)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연쇄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A사의 주장이다.
장씨는 "의장공장에서 같은 일을 당한 현지 업체 2곳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했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 정부에 공문을 보내면서 D사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다"며 "정작 한인 업체인 우리에겐 일절 반응이 없다"고 호소했다. 장씨는 7월 인도네시아에서 현대차와 D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업체들은 현대차의 편법 계약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D사는 인도네시아에 법인이나 지사가 없어 현지에서 EPC(설계·조달·시공) 중 건설에 해당하는 C(Construction) 사업이 불가능한 '유령 회사'라는 것이다. 사실상 불법이다. 현지 변호사는 "현대차와 D사의 C사업 계약은 인도네시아 세법, 건설법, 노동법상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현대차의 1차 하청업체 중 현지 법인이 없는 업체가 1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지 업체의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져 D사와 EPC 계약을 맺었고, 그중 일부를 D사가 재하청한 것으로 안다"며 "작년 말 이견이 있어 중재를 한 건 맞지만 추가 논란에 대해선 하도급 간 계약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장씨는 "다른 한국 기업과 일을 많이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공사가 진행 중일 때는 중재에 나서더니 막상 공사가 끝나니 남 일이라고 떠넘기는 현대차의 행태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대가 컸던 국가적인 투자인데 왜 우리 같은 영세업체들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거듭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