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 정보기술기업(빅테크)들이 잇따라 자체 칩 개발에 뛰어들면서 반도체 시장에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계의 쌍두마차로 군림해온 인텔이나 퀄컴의 위상은 줄어든 반면,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의 입지는 상한가를 치솟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새로운 수요군으로 급부상한 빅테크들의 최근 움직임을 감안하면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의 몸값은 갈수록 뛸 것으로 점쳐진다.
21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검색엔진 기업인 구글이 전날 선보인 신형 스마트폰 '픽셀6' 시리즈엔 자체 제작한 '텐서(Tensor)' 칩셋이 장착됐다. 이전까진 퀄컴의 모바일 칩을 써왔는데, 이번 신제품에선 독자 개발한 자사 칩으로 화려하게 귀환한 모습이다.
전날 아이폰 제작사인 애플도 한 단계 진화한 '노트북용 M1칩'을 내놨다. 애플은 지난해 자사 제품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맞춤형 반도체를 만들겠다며 첫 자체 칩을 내놨는데, 1년도 안 돼 기존 칩 성능을 훨씬 능가하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인 것이다. 애플은 신형 M1칩을 곧바로 최상위 프리미엄 제품군에 적용했는데, 사실상 '탈(脫) 인텔'을 선언한 셈이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MS), 테슬라 등도 자체 반도체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칩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샤오미, 화웨이, 오포 등 중국 빅테크들도 속속 자체 칩 개발에 합류한 상태다. 이에 따라 IT업계에선 "기술과 자금력을 앞세운 빅테크들이 자체 칩 개발에 나서면서 인텔, 퀄컴, AMD 등 기존 컴퓨터(PC)·모바일칩 시장 강자들 지배력도 크게 위축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반면 반도체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파운드리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의 경우, 값비싼 최첨단 장비 보유 여부가 경쟁력의 바로미터란 점에서 진입 장벽은 상당하다. 빅테크들은 칩을 설계는 할 수 있어도 직접 생산까지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빅테크들이 자체 칩을 만들수록 그 주문은 파운드리에 몰릴 수밖에 없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요즘 파운드리 업계는 하위업체들도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할 만큼 호황인데, 앞으로 빅테크까지 가세하면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수년 내 150조 원 규모로 커질 걸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벌써부터 파운드리 시장의 지각변동까지 점치고 있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 TSMC와 삼성전자의 양강 체제 속에 3~5위 업체가 5~7% 안팎의 점유율을 나눠 갖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기술력과 자금력을 갖춘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마이크론이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들 유력한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다만 파운드리 업황은 초호황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과실은 상위 업체인 TSMC와 삼성전자에 집중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첨단 칩 수요가 급증하는데, 하위업체들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당장 TSMC를 따라잡진 못해도 적잖은 수혜를 받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낸 반도체 '파운드리 전망 보고서'에서 "TSMC와 근접한 기술력을 갖춘 삼성전자가 있는 한 위탁업체는 생산물량의 배분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며 "삼성전자가 양강체제의 과실을 상당폭 가져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 비메모리사업부는 올 4분기 사상 최대 실적에 이어 내년에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