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도발 재개한 北... 한미 '압박' 강화하고 군비증강 '쐐기박기'

입력
2021.10.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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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번째 미사일 발사... SLBM 가능성

북한이 19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또 발사했다. 올해 들어 8번째, 지난달 30일 지대공 미사일을 쏘아 올린 지 20일 만의 무력 시위다. 9월 한 달 동안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열차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신형 지대공 미사일’ 등 4차례 도발을 통해 매번 진일보한 기술을 선보였던 북한이 이번에 꺼낸 카드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다. 마지막 SLBM 시험 발사는 2019년 10월 수중 바지선에서 이뤄진 ‘북극성-3형’이었다.

갈수록 빨라지는 북한의 무력시위 주기는 여러 포석을 담고 있다. 특히 이날 서울과 미국 워싱턴에서 북핵 및 정보 분야 한미일 고위급 회동이 진행된 점에 견줘 협상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압박 의도가 역력하다. 동시에 SLBM 발사가 ‘도발’ 이 아니라 북한이 연초부터 줄곧 주장한 ‘자주국방’의 범주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청와대는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깊은 유감”을 표했지만, 이번에도 도발로 규정하지 않았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오전 10시 17분쯤 함경남도 신포 동쪽 해상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SLBM 추정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도 확인했지만, 발사 장소가 3,200톤급 잠수함을 건조 중인 신포라는 점에서 SLBM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북한은 2016년 8월에도 신포에서 SLBM을 쐈다. 만약 발사 플랫폼이 잠항 중인 잠수함으로 판명되면 북한은 세계 8번째 공식 SLBM 보유국이 된다.

한미일 연쇄 대화 노린 北 도발

북한의 도발 의도는 우선 미묘한 발사 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날 마침 한미 북핵협상 수석대표 협의(워싱턴)와 한미일 정보기관장 회의(서울)가 열려 대북 대응 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과 인도적 지원을 매개로 한 북한과의 대화 재개 방안을 놓고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일 논의가 대화에 앞서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하는 북한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자 관심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날을 ‘D-데이’로 잡았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북한 대외선전매체 통일의메아리는 이날 “대립관계를 방치해 둔 채 종전선언을 해도 선언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결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라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금은 종전선언을 받을 마음이 전혀 없다는 북한의 입장이 미사일 도발에 투영된 것”이라며 “다시 대화를 하려면 적대시 정책을 먼저 거둬야 한다는 북한식 ‘우선순위’를 환기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중기준' 철회 떠보고, '누리호' 견제하고

김정은 정권은 남측이 ‘이중기준’을 없앨 의향이 있는지도 거듭 시험했다. 이중기준 철폐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북한이 내건 핵심 조건이다. 연이은 미사일 시험 발사가 남측처럼 국방력 강화 차원에서 이뤄진 군사훈련일 뿐 도발은 아니라는 논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1일 국방발전전람회 기념연설에서도 “남조선에서 도발과 위협이라는 단어를 대북전용술어로 쓰고 있다”면서 이중적 태도를 지적했다. 관계를 개선하고 싶으면 도발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엄포다. 이 때문에 이날 무력 시위는 이중기준에 관한 정부의 반응을 다시 떠보고, 남북관계 진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속내가 담긴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은 4일 남북 통신연락선을 재가동한 뒤 지금껏 뚜렷한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최근 주변국들이 ‘신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데 대한 ‘반작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한미 미사일지침 해제 이후 첨단무기 개발ㆍ도입을 서두르는 남측을 향한 ‘응수’와 ‘견제’ 목적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달 15일 SLBM 최종 시험 발사에 성공했고, 이날 글로벌 방산업체가 총출동하는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ㆍ아덱스)'도 개막했다. 또 21일에는 우리 자체 기술로 개발한 누리호 발사가 예정돼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역시 군사력 확충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강화할 수 있는 더없는 기회인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반도 주변국의 무기개발 소식은 북한에 호재”라며 “무기를 하나씩 공개하며 우리도 핵 군축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靑, 첫 '깊은 유감' 표했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쉴 틈 없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장고(長考)’에 들어간 분위기다. 북한이 도발과 대화 신호를 엇갈려 보내는 탓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기도 어렵다. 청와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발사 73분 만에 NSC를 개최하는 성의를 보였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협의 와중에 (발사가) 이뤄져 깊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냈다. 청와대가 올해 북한의 도발에 ‘깊은 유감’이라는 표현을 쓴 건 처음이다.

다만 여전히 북한의 도발을 명시하지 않아 대응 수위를 조절하며 대화 정국으로 넘어가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성공 후 북한과의 대화가 진전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이번에도 그런 해석이 맞고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