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경의 엔터시크릿] 쿨하고 멋진 여자들의 '의리'

입력
2021.10.1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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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자의 우정을 얄팍하다 했던가. '진짜' 여자들의 우정을 느끼고 싶다면 넷플릭스 '볼드타입'을 한번쯤 보길 권한다. 우정만 있냐고? 아니다. 다사다난한 직장생활과 바람 잘 날 없는 연애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어느새 몰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볼드타입'은 글로벌 여성 잡지 스칼릿에서 일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4년간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정식 기자로 채용된 제인 슬론(케이티 스티븐스)과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며 패션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서턴 브레이디(메간 파히), 그리고 소셜미디어 디렉터인 캣 에디슨(아이샤 디)이 극을 이끌어간다.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문제, 시의성 있는 이슈들을 다룬다는 점도 유의미하게 다가오지만 그보다는 세 주인공의 우정이 무척이나 인상 깊다. 서로를 통해 성장과 치유를 경험하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시샘이 뭐죠?" 친구의 일에 진심인 여자들

한 직장 내에서 각기 다른 분야를 맡고 있는 세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이다.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캣은 의사인 부모님 덕에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서턴은 알콜 중독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제인은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마음 한 켠에 늘 그리움을 품고 사는 인물이다.

자라난 환경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소신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면서도,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포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따뜻한 마음씨는 덤이다. 일에 대한 고민은 물론 애인과의 성생활과 건강 문제 등 아주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누며 서로의 슬픔과 불행을 감싸 안아준다. 친구가 바이섹슈얼이란 사실을 알아도 개의치 않는 쿨함은 기본이다.

몇몇 신만 봐도 진심은 느껴진다.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정식 기자가 된 제인은 건물 로비에서 "기자로 들어가는 기분을 기억하고 싶다"며 두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빨리 들어가라며 사람들이 화를 내자, 캣은 "내 친구한테 중요한 순간이야"라고 날카롭게 응수한다. 회의 시간에 기자가 된 제인은 테이블에 착석하지만 아직 그 자격을 갖추지 못한 서턴과 캣은 뒤에 서서 이 모습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눈빛엔 그 흔한 시샘과 질투가 없다. 친구의 성장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회사의 중역 리처드 헌터(샘 페이지)와 비밀 연애를 들켜버린 서턴이 직장 내에서 대놓고 비난을 받을 때도 두 친구는 자기 일처럼 분노한다. "상사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서 일을 얻었지. 일하는 방식도 네 옷만큼 구닥다리"라고 공격하는 직원을 향해 캣은 "서턴은 특혜 받은 적 없다. 실력만으로 충분히 인정 받고 있다"면서 "그리고 오늘 입은 옷도 끝내준다"고 대꾸한다. 친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슬며시 자취를 감추는 비겁함 따윈 이들에게 없다.

'볼드타입'의 세 주인공은 각자에게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패션 창고에 모여 긴급 회의를 한다. 상대가 겪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도움을 주려 애쓴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과 잡담을 하며 보내기도 하는데, 이들이 패션 창고에 모일 때가 '볼드타입'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종종 여자들끼리 헐뜯고 질투하는 것을 당연한 듯 말한다. 마치 여자라는 존재는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하지만 시기(猜忌)는 비단 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사람들에 해당되는 사항도 결코 아니다.

드라마 밖에서도 여자들의 의리와 우정은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인기를 모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역시 여자들의 성장과 우정, 실력에 대한 인정과 서로를 향한 존경심 등을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지 않았던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음 기댈 곳은 필요하다. '볼드타입'이 다소 뻔한 성장 드라마를 답습하고 있음에도 여운이 남는 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진한 우정 때문이다. 바쁜 일상 탓에 잠시 잊고 지냈던 친구들을 떠올리게 됐고, 직장 내에 마음이 통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특별하게 취급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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