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200마리도 뚝딱 튀겨요... 로봇 셰프의 주방 가보니

입력
2021.10.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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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세계는 결코 우아하지 않다. 요리에 자주 따라붙는 '정성스런', '손맛이 담긴' 등의 미사여구는 요리가 고된 노동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흐린다. 하지만 해 본 사람은 안다. 주방이란 열기에 맞서며 볶고, 튀기고, 냄비에 눌러붙지 않도록 쉼 없이 저어 줘야 하는 '매운 맛' 노동이 필연적인 장소다. 하얀색 조리복을 입은 셰프의 평화로운 주방은 방송이 만들어 낸 환상에 가깝다.

수백, 수천 명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 주방의 노동 강도는 말할 것도 없다. 170도를 웃도는 끓는 기름 앞에서 매일 100여 마리의 닭을 튀겨야 하는 치킨 가게가 사람 대신 '로봇 팔'을 찾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발상이다. 국방부도 최근 조리병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조리 로봇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성큼 다가온 '로봇 셰프' 시대가 가져올 주방은 어떤 모습일까.

닭 튀기고 햄버거 패티 뒤집고... 떡볶이까지 척척

지난 5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식당 '봇밥'에서는 로봇 '바비'가 한창 찌개를 끓이는 중이었다. 사람이 특수 제작된 스테인리스 뚝배기에 재료를 소분해 놓으면, 바비는 이 뚝배기를 인덕션으로 옮겨 3분 30초 동안 끓인다. 인덕션 화구 개수만큼 6개를 동시에 조리할 수 있는데, 보통 점심시간 약 1시간 30분 동안 약 100인분의 찌개를 만든다. 이 식당의 사장인 케이푸드텍 김용 대표는 "사람이라면 1.5~2명이 붙어서 해야 할 일"이라며 "무거운 뚝배기를 집게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일만 사라져도 주방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조리 로봇이 국내 처음 도입된 건 치킨 가게에서다. 지난해 5월 경남 김해에 문을 연 치킨전문점 '디떽'에서는 바삭바삭한 맛을 좌우하는 튀김을 로봇이 담당한다. 로봇은 닭을 튀김기에 넣고, 다 튀겨지면 바스켓으로 건져 올린 뒤, 10회 정도 위아래로 흔들어 기름을 털어낸다. 로봇 가격은 설치비, 유지·보수 비용을 포함해 약 5,000만 원 상당. 점주는 로봇이 그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박미숙 디떽 김해점 대표는 "바스켓 무게가 1㎏ 정도로 무거워서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팔꿈치와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간다"며 "로봇이 없었으면 치킨집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여러 종류의 조리 로봇이 주방에서 활약 중이다. 미국 스타트업인 미소 로보틱스의 '플리피(Flippy)'가 대표적이다. 햄버거 패티를 뒤집는 로봇으로 시장에 등장한 플리피는 지난해 튀김도 할 수 있도록 기능이 업그레이드됐고, 현재 화이트캐슬 등 미국 내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중심으로 보급돼 있다. 가격은 한 대당 3만 달러(3,5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열린 CES(국제가전전시회)에서 영국 기업인 몰리 로보틱스는 아예 하나의 거대한 로봇 주방 시스템을 공개했다. 판매가가 약 4억 원으로 알려진 '몰리 키친 로봇'은 두 개의 로봇 팔이 5,000가지의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하도록 설계됐다. 유명 셰프의 조리 기술을 3D로 캡처한 후 이를 재현했는데,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조리 도구를 쓰며 스테이크를 굽고, 파에야를 만든다.

로봇은 일자리를 뺏을까, 구인난을 해소할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로봇 셰프, 로봇 주방의 등장이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그러나 도입 초기여서인지 아직은 주방의 자동화가 식당의 구인난을 해소시켜 주는 효과가 더 크다는 반응이 많다. 카페와 달리, 위험하고 힘든 식당 주방은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다. 조리 로봇은 '버튼'만 누르면 균질한 음식을 조리할 수 있기 때문에 경력이나 개인의 체력은 직원 채용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지난 12일 서울 양천구의 한 분식집. 최근 개업한 이곳 주방에서도 국내 스타트업인 '신스타프리젠츠'의 오토웍 4대가 떡볶이와 덮밥 등 볶음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오토웍에 떡 1인분과 물 500ml를 넣고, 본사에서 나오는 떡볶이 소스 70g을 넣은 뒤 '쿡(Cook)'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누구나 이 주방에서 일할 수 있다. 직접 해봤더니 실제 6분 만에 먹음직스러운 떡볶이가 완성됐다. 맛도 직원들이 만든 것과 똑같았다. 직원 강우진씨는 "2, 3일이면 작동법을 모두 배울 수 있고, 기계가 조리하는 동안 저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편하다"고 말했다. 그 역시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 주방 경력이 전무하다.

변화는 가까이 와 있다. 최근 부실 급식으로 홍역을 치렀던 국방부는 위험도와 노동 강도가 높은 튀김 음식을 로봇에게 맡기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원정훈 디떽 대표는 "이르면 하반기 안으로 군 급식실에서 조리병을 대신할 조리 로봇 시범사업을 할 예정"이라며 "확산 속도로 보면 5년 뒤 치킨 집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 닭을 튀기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다만 비싼 가격은 보급의 걸림돌이다. 김용 대표는 "지금 가게에서 쓰는 로봇이 2,500만 원인데, 수요와 생산량이 늘면서 1,000만 원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웬만한 식당에 로봇 한 대씩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격대가 더 떨어지면 식기세척기가 그러했듯이 로봇 셰프가 우리 집 주방으로 들어오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평가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로봇공학과 교수는 "지금 사람들이 하는 일의 90% 이상은 100년 전에 없었던 일"이라며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겠지만 결국 사람이 로봇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직업이 새로 만들어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을 창조해낼지를 고민하는 게 인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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