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헌법재판소가 7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자국의 사법개혁안에 대해 제재명령을 내린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폴란드 헌법이 EU법에 우선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폴란드가 EU의 근간인 ‘EU법 우위’에 대한 반기를 들면서 폴란드의 EU 탈퇴(폴렉시트)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월 EU집행위원회가 폴란드 정부에 사법개혁안을 통해 구성한 국가사법평의회(NCJ)의 기능을 정지하라고 요구한 것은 내정간섭이며, 제재 근거가 된 EU법의 조항 또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지난 4월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EU가 폴란드의 사법개혁안 중지 명령을 한 것과 관련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헌재에 요청했다.
폴란드의 NCJ는 지난해 1월 폴란드 집권 여당인 강경우파 법과정의당(PiS)이 주도한 사법개혁안의 일환으로 판사들의 사법권 남용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설립됐다. NCJ 위원들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소환, 조사해 벌금형을 내리거나 해임할 수 있다. NCJ 위원은 집권 여당이 장악한 폴란드 하원에서 선출된다. 하지만 사실상 여당이 판사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사법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EU집행위는 해당 법안이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철회를 요청했다. 유럽사법재판소도 앞서 “외부로부터 모든 간섭과 압력으로부터 판사의 자유는 필수적이며 판사의 임기는 합법적이고 타당한 근거 위에서만 단축될 수 있다”고 EU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폴란드 정부가 이를 거부하고 사법개혁안을 강행하면서 EU와 갈등을 빚어 왔다. EU는 폴란드에 배정된 EU지원금 420억 달러(약 50조 원) 집행을 보류하는 등 제재를 강화했다.
EU집행위는 이날 폴란드 헌재 판결에 대해 “EU법의 우위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EU집행위는 EU법의 통일된 적용과 무결성을 보호하기 위해 EU조약에 따라 권한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폴란드와 EU가 강경하게 맞서면서 폴란드의 EU 탈퇴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제민주주의연구소의 제이콥 자라체스키 연구원은 “이번 판결은 민족주의 정당이 집권한 폴란드와 EU 간의 심각한 충돌과 분열을 드러낸 것”이라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경제적 갈등에 따른 것이었다면 폴렉시트는 국가체제에 대한 갈등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