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대왕암과 고래 떼가 출몰하는 푸른 바다를 낀 해양도시 울산. 공업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요소 때문에 청정 이미지 강한 울산 앞바다지만, 해양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도시다. 울산시와 환경단체가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연 1,000톤 이상의 쓰레기 중 57%는 폐플라스틱이다. 재사용돼야 할 자원이지만 대부분 소각 처리된다. 플라스틱 1톤을 소각할 때 발생하는 비용 30만 원은 지자체가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더 큰 문제다.
울산 남구 장생포에서 고래 관련 기념품을 제작하던 사회적경제기업 '우시산'에도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아기 고래 배 속에서 40㎏이 넘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발견되는 등의 사례를 접하면서 문제의식도 느꼈다. 폐플라스틱 문제도 해결하고 고래와 관련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폐플라스틱을 활용할 만한 전문 기술이 부족했다. 관련 기술과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그 과정에서 우시산은 지난해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의 '사회적경제 혁신성장 사업'에 공모, 선정돼 KIAT의 도움으로 폐플라스틱을 3D 프린팅 원료(재생칩)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기술을 통해 멸종 위기 해양 생물 인형과 에코백, 우산 등 업사이클링 제품 30여 종을 개발, 판매까지 하고 있다. 변의현(43) 우시산 대표는 5일 "해당 사업 덕분에 소각되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 멸종 위기 동물을 알리는 사업까지 하고 있다”며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폐플라스틱으로 우시산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내자 뜻을 같이하는 단체들도 생겼다. 울산테크노파크가 폐플라스틱 수거 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 울산항만공사, SK에너지 등 기업의 협조를 끌어냈고, 이제는 선박뿐 아니라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하는 전체 플라스틱을 모을 수 있을 정도의 네트워크까지 구축됐다. 변 대표는 “이 덕분에 지난해 24톤의 폐플라스틱을 수거했다”며 “이 덕분에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매출을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우시산에 1일 ‘이달의 한국판 뉴딜상’을 안기기도 했다.
KIAT의 사회적경제 혁신성장 사업이 전문 기술이 부족한 사회적경제 기업의 사업성 확보와 활로 개척에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2019년 시작된 이 사업은 규모가 작고 기술 역량이 부족한 사회적경제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사회적경제 기업에 필요한 맞춤형 연구·개발(R&D)과 사업 마케팅, 컨설팅에도 도움을 준다. 일회성 자금 지원이 아닌,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원 사업과 차별화된다.
사업 첫해 60개팀에 123억 원, 지난해 60개팀 110억 원, 올해는 50개팀에 110억 원 규모 예산을 지원했고, 이를 통해 청년과 장애인, 어르신, 경력 단절 여성 등 취약 계층 111명에게 일자리도 안겼다.
석영철 KIAT 원장은 "지역 자원을 활용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일자리까지 창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며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탄탄하게 하고, 지역사회의 풀뿌리 경제 자생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