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의 치유"… 노근리 사건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

입력
2021.10.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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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전부개정안 국회 통과로
치유 사업·보상금 지급 길 열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으로 피란민 수백 명이 희생된 충북 영동군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을 위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유센터가 건립된다. 피해 보상을 전제로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재조사도 진행된다.

충북도는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노근리 사건 희생자·유족 지원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이 대책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노근리사건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충북도 관계자는 "특별법 개정안에 희생자·유족 권익보호, 트라우마 치유 사업 등 유족들 요구 사항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트라우마 치유센터는 노근리 사건 현장(영동군 황간면)에 조성된 노근리평화공원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곳에선 사건 생존자와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 문학·음악·원예·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심리 치유를 진행한다. 정신과 치료와 함께 건강 상담, 신체·운동 요법도 병행한다.

치유센터 건립은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의 숙원이었다. 유족회 측은 “당시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유가족 대부분이 7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치유의 길이 열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재조사도 이뤄진다. 정부는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조사를 토대로, 노근리 사건 사망자는 226명이고 유족은 2,240명이 발생한 것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회에서는 “피란민 중 일부가 조사에서 빠졌다”며 추가 조사를 요구해왔다. 이번 특별법 개정안에 ‘법 시행일부터 1년 이내 추가 희생자 심사’ 조항이 명시돼 있어, 법이 시행되면 재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보상금 지급 길도 열렸다. 보상이 특별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부대 의견으로 ‘국가는 제주 4·3사건 보상 기준을 참고해 노근리 사건 희생자·유족에 대한 보상 방안을 강구한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8월 국회 행정안전위 회의에서 “제주 4·3사건을 기준으로 한국전쟁 전후 과거사 사건 피해자 보상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북한군 공격에 밀려 후퇴하던 미군이 전투기와 기관총으로 영동군 황간면 쌍굴다리에 숨어 있던 피란민들을 공격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잊힐 뻔한 사건은 1999년 9월 AP통신 보도로 실체가 드러났다. 이후 한미 양국 합동 조사에 이어 2011년 사건 현장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됐으나,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치유와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민영완 충북도 자치행정과장은 “트라우마 치유센터는 예산 확보를 거쳐 내년 상반기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실적인 피해 보상과 진정한 과거사 청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청주= 한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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