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유명 공립 고등학교 야구부 지도자들이 일부 학생들을 상대로 차별 대우와 가혹행위, 폭언 등 정신적·신체적 괴롭힘을 가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스포츠윤리센터가 조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센터는 지난 8월 이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진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고 내용엔 센터의 양대 조사 영역인 인권침해와 비리행위가 모두 포함돼 있어, 각각을 담당하는 조사1팀과 조사2팀이 합동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윤리센터는 트라이애슬론팀 내 가혹행위로 극단적 선택을 한 최숙현 선수 사건을 계기로 체육계의 비윤리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독립 기구다.
해당 학교 야구부는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고 프로 선수를 다수 배출하는 등 국내 대표적 야구 명문으로 꼽힌다. 센터는 감독과 코치 2명으로 구성된 이 학교 야구부 코치진을 성토하는 신고를 접수했는데, 신고 내용에는 △차별 대우 △폭언 및 가혹행위 △배임 및 횡령 의혹이 포함됐다. 신고자는 당사자들에게 사실확인서를 받아 피해 사례를 여러 건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 야구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코치진은 소수 학생만 편애하면서 선수단을 불공정하게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들에 대해선 △선발 명단 제외 △불성실한 지도 △비난 등 노골적인 차별 대우를 했다고 한다. 이들은 "범죄 증거가 남는 가혹행위보다는 티가 안 나는 심리적 압박을 주로 가했다"면서 "학생이 무력감을 느껴 제 발로 팀을 떠나게 만들려고 지능적으로 괴롭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야구부에 들어온 신입생 선수 26명 중 절반을 훨씬 넘는 17명이 전학을 갔는데, 상당수는 코치진의 부당 대우 때문에 학교를 떠났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가혹행위와 폭언도 신고됐다. 신고자와 본보가 입수한 문건 등에 따르면 해당 코치진은 한쪽 어깨가 반쯤 탈골된 한 학생에게 배팅볼(타격 연습을 도우려 던져주는 공)을 수백 개를 던지게 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학생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국 같으면 머리에 총을 쏴서 죽였을 것" "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지옥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폭언을 들었다고 한다.
배임·횡령 의혹도 제기됐다. 감독이 학교 동문회 기금으로 마련되는 야구부 장학금 수혜자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 개인적 친분이 있는 무자격 학생을 추천했다거나, 코치진이 야구부 운영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내용이다.
코치진에게 1년 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김지안(가명)군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올해는 3개월 만에 체중 7㎏이 빠지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중학생 시절 두 번이나 우승 멤버에 이름을 올리면서 촉망받던 그는 고교 진학 후 기량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자 코치진의 차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후배보다 실력이 한참 떨어진다"는 등 수시로 망신을 주더니, 급기야는 "포지션을 바꾸든지 전학을 가라"고 압박했다는 게 김군 측 주장이다.
코치진이 출전은커녕 훈련 기회도 공평하게 주지 않아 따로 사설 레슨장에서 훈련하고 있다는 김군은 "내가 훈련할 때 코치님들은 휴대폰만 보고 감독님은 아예 방에만 계실 때가 많다"면서 "좋아하던 야구를 그만두고 죽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피해 학생들은 코치진이 철저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수에 대한 호오를 결정하기 때문에 눈 밖에 나더라도 해결책이 없다고 호소했다. "보통 입학 초기 첫인상으로 (선수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노력을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가깝다"는 주장도 나왔다.
센터는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 구체적 사건 처리 방향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센터 관계자는 "혐의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조사된다면, 내부 심의위원회에서 피신고자들에 대한 징계 수준을 정한 뒤 문체부에 관련 기관에 징계를 권고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며 "사안의 경중에 따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라면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야구인들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해당 코치진의 자질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프로팀과 고교 야구부를 지도한 경험이 있는 A씨는 "학생들은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도자는 항상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학교 야구부 사정에 정통한 B씨는 "지금 코치진은 경쟁심을 북돋워 아이들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팀을 분열시키고 있다"면서 "혐오스러운 행동"이라고 비판했다.